'일이야기'에 해당되는 글 1건

  1. 2016.11.15 [수필] 일상적인 업무상 갑질의 인과응보, 업보?

[일이야기 1]



이십대 후반 공기업의 자회사에 근무할 때 였다.  장비를 구매하는 과정에서 시험평가하는 업무를 맡았다.  새로운 서비스가 출시될 때 장비 회사도 그 서비스가 실시되기 전에 새로운 장비들로 교체해야한다.  구조적인 갑질은 그때부터 시작된다. 새로운 장비를 어떻게 만들 것인지 제안을 '을'에 해당하는 납품업체들에게 받는다. 약 4군데 업체로 부터 받은 설계도를 비교하여 가장 좋은 설계도를 기본으로 한다. 다른 업체 제안의 장점도 일부 포함하여 새로운 장비의 설계를 완성한다.  


이러한 과정에서 '을' 업체들의 고유한 독자적인 기술은 무시된다. '특허 포기각서'를 받고 시작하기 때문이다.  네군데 업체중 2곳은 결과적으로 탈락한다. 탈락한 업체들은 약 8개월 가량 걸리는 설계 개발 기간을 날리는 것이다.  개발 팀장들이 퇴사하는 경우 있고 치명상을 입은 업체는 몇달 후에 도산하는 경우도 있다. 


나는 제안요청에 응한 업체들이 제출한 설계도와 시제품을 평가하는 일을 맡았다.  경영진의 입김도 있기 때문에 내가 평가하는데로 업체가 선정되지는 않지만 중요한 역할이었다.  업무상 '갑질'하는 포지션이었다.  필요한 자료가 있으면 아무때나 전화하고 성에 차질 않으면 회사로 불러들였다. 내 맡은 바 업무에 최선을 다하는 것이라 여겼다. 가끔 얻어 마시는 술은 대수롭지 않게 생각했다.  




세월은 흘렀고 무역업을 하지만 사실 혼자 일하는 자영업자다.   비즈니스 기회를 포착하면 업체에 제안을 넣는다. 시장조사를 통해 목표 매출과 수익률을 추정하여 큰 업체들에게 제안한다. 대부분 답이 없다. 열에 하나가 아니고 서른에 하나정도 답이온다. 반갑지만 그 다음 부터 쉽지 않다. 추가 조사를 요구하고 컨퍼런스 콜을 통해 지독하게 세세한 정보까지 요구한다.  그리고는 수익배분에 대해 논한다. 나는 강하게 치고 나간다. '앵커'효과를 노린 협상 전략이다. 지난번에 유사한 일을 맡았을 때 수익성이 제공한 댓가에 대하여 너무 작았다고 생각하기도 했기 때문이다. 


그런데 강하게 치고 나간 후 연락이 딱 끊겼다.  이리저리 연락해도 아무 응답이 없다. 외국 업체라 찾아갈 수도 없다. 한달이라는 시간과 노력과 큰돈 만져볼 설레임을 날렸다. 


몇 달 뒤 '스티븐'이라는 한국계 외국인이 내가 제안했던 서비스를 론칭하고 대대적으로 영업하고 다닌다. 심지어 나에게도 홍보용 스팸메일이 도착해있다.  이럴 줄 알고 있었지만 가슴이 내려 앉는다. 


내 제안을 진지하게 받아들이고 비즈니스 기회를 찾은 외국업체 들도 주어진 방식대로 일을 하는 것이라고 자위해 본다. 내가 최초로 제안했다고 해서 보은하는 비즈니스는 아무데도 없다.  기업이 비즈니스 기회를 발굴하면 이행방식에 대해서는 이윤추구의 극대화를 위해 여러가지로 검토하는 것이 당연하다.  사업 파트너는 독점적이기보다는 말 안들으면 대체 가능하게 멀티로 운영하는 것이 현대의 상도다.  게다가 외국에 있으니 조건이 안 맞으면 말없이 돌아서도 법적으로 호소하지 못할 테니 쉬운  상대다. 

    

십삼사년전 열심히 설계하고 개발하여 만든 시제품을 아무 댓가 없이 '갑'사에 넘기고  제안에 탈락하여 짤렸던 '을'업체의 팀장들이 생각난다.  그들이 소주잔을 기울이며 울분을 토로할때 즈음 그들을 짜른 나는 월급받고 '주어진 일'을 하는 거라고 생각했다. 내가 무슨 원한이 있어 그들을 짤랐겠는가.   그냥 일이었지.  


마찮가지 아닐까. 내게 무슨 억한 심정으로 나의 노력과 시간을 갈취했을까?  그들의 삶의 방식이고 나는 그들의 기준에서 탈락되었을 뿐...  


돼지를 잡으러 가는 백정에게 '그게 뭐냐?'고 물었다던 스님이야기가 생각난다. 스님 눈에는 전생에 둘이 반대였기 때문이란다.  백정은 스님에게 '아니 이게 돼지지 뭐에요'라고 답했다 한다. 


  

Posted by 샤르딘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