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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2016.05.29 주역계사전 번역 김경방 원저 4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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子曰, 󰡔󰡕何爲者也? 󰡔󰡕開物成務, 冒天下之道, 如斯而已者也. 是故聖人以通天下之志, 以定天下之業, 以斷天下之疑.

 

子曰, 󰡔󰡕何爲者也? 󰡔󰡕開物成務, 冒天下之道, 如斯而已者也. 是故聖人以通天下之志, 以定天下之業, 以斷天下之疑.

 

공자가 말하였다. 󰡔주역󰡕은 무엇을 하는 것인가? 󰡔주역󰡕은 만물을 창조하고, 사무를 완성하여, 백성의 일을 포괄하니, 이와 같을 따름이다. 이런 까닭에 성인은 󰡔주역󰡕을 써서 세상의 사상을 통일하며, 세상의 사업을 성취하며, 세상의 문제를 해결한다.

 

여기에서 定之以吉凶, 所以斷也까지가 제11장이다. 11장은 계사전에서 가장 중요한 부분이다. 이 장은 󰡔주역󰡕의 성질내용특징작용64괘의 생산 및 일부 개념에 대한 정의 등과 같이 매우 중요한 문제에 대하여 정확하고 명백하며 심각하게 대답한다. 이 말은 공자가 󰡔주역󰡕을 위대한 철학저작으로 생각하여 연구하였지, 단순히 점치는卜筮책으로 생각하지는 않았다는 의미이다.

夫易何爲者也?”는 공자 자신이 제기한 문제이며 그 다음의 말들은 이 문제에 대한 대답이다.

開物成務에서 開物은 처음 시작한다創始는 의미이다. 즉 과거는 없고 현재만이 있다는 말이다. ‘成務는 완성(完成)의 의미이다. 즉 사무를 총결한다는 말이다. 맹자는 말하길 공자를 집대성(集大成)이라고 한다. 집대성이란 것은 금()으로 소리를 퍼트리고, ()으로 거두는 것이다.라고 하였다. ‘성무집대성은 같은 의미이다. “開物成務󰡔주역󰡕이 사물의 창시와 완성을 모두 포괄한다는 말이다. 즉 사물의 발생발전에서 종결에 이르는 전 과정이 모두 󰡔주역󰡕의 범위 안에 있다는 말이다.

자는 가리다覆蓋’, ‘덮어 씌우다’, ‘개괄하다該括는 의미이다. “冒天下之道󰡔주역󰡕이 세상의 모든 사물의 발생발전 및 종결의 전 과정을 포괄한다는 말이다. “冒天下之道는 윗 글의 彌綸天下之道와 의미가 비슷하다. 다른 점은 彌綸天下之道하늘의 도天之道’, 즉 자연법칙에 중점을 두었기 때문에 이 말 다음에 바로 은미한 것과 드러난 것幽明’, ‘죽음과 삶死生’, ‘귀신(鬼神)’을 말한 반면, “冒天下之道백성의 일民之故’, 즉 사회법칙에 중점을 두었기 때문에 이 말 다음에 바로 사상을 통일함通志’, ‘사업을 성취함定業’, ‘문제를 해결함斷疑을 말한 점이다.

如斯而已者也󰡔주역󰡕은 단지 開物成務, 冒天下之道일 뿐이지 그 밖에 어떤 것이 있지 않다는 말이다. 실제로 공자는 󰡔주역󰡕은 철학을 강논한 것이라고 말한다. 왜냐하면 철학은 바로 자연과 사회에 대한 지식, 나아가 고도의 추상과 개괄을 모두 포함하고 있기 때문이다.

是故聖人以通天下之志, 以定天下之業, 以斷天下之疑”, 에서 는 사상이고 은 사업이며 는 문제이다. 이 구절의 의미는 바로 성인이 󰡔주역󰡕을 써서 세상 사람들의 사상을 통일하고, 세상 사람들의 사업을 성취하며, 세상 사람들의 문제를 해결한다는 것이다.

 

 

故蓍之德圓而神, 卦之德方以知, 六爻之義易以貢. 聖人以此洗心退藏於密, 吉凶與民同患. 神以之來, 知以藏往, 其孰能與於此哉! 古之聰明叡知神武而不殺者夫!

 

그러므로 시초(蓍草)의 성질은 일정하지 않음과 신묘함이며, 괘의 성질은 일정함이 있어서 지혜롭고, 六爻의 뜻은 변화함으로써 알려준다. 성인은 시와 괘로써 점치기 이전에 은밀히 간직하고 있던 것을 드러내며, 길흉을 백성과 더불어 함께 걱정한다. 신묘한 시초로 미래를 알고 지혜로운 괘로 과거를 간직하고 있으니 그 누가 여기에 참여할 수 있겠는가! 옛날의 총명(聰明)함과 예지(叡智), 신묘한 무예神武가 있으면서도 사람을 함부로 죽이지 않는 자로구나!

 

전반적으로 볼 때 󰡔주역󰡕에는 네가지 요소, 가 있다.

蓍之德圓而神, 卦之德方以知, 六爻之義易以貢이 세 구절은 시효의 서로 다른 성질에 대한 설명이다. ‘은 곧 성질이다. 시의 성질은 이다. ‘은 운행이 일정하지 않다運轉不定는 의미이다. ‘은 음인지 양인지 헤아릴 수 없다陰陽不測는 의미이다. 점을 칠 때 네 단계四營와 열 여덟번의 변화十八變을 거친 후에 어떤 괘가 나올지는 일정하지 않기 때문에 원과 신을 말하였다. “卦之德方以知에서 을 한강백(韓康伯) 주에서는 멈추어서 구분이 있다.”라고 하였다. 이것은 바로 괘의 성질과 시의 성질이 다르다는 말이다. “卦之德方以知에서 은 일정함이 있다는 말이다. 시초(蓍草)를 세어 괘를 정하기 때문에 그 괘의 내용은 일정하다. ‘는 괘가 머금고 있는 철학사회 및 정치의 풍부한 사상을 가리킨다. 효는 괘와 다르다. 괘는 한 사물, 또는 한 시대의 총체적인 모습을 거시적 관점에서 반영한다. 상대적으로 말하면 이것은 정태적(情態的)이다. 그러나 효는 한 사물의 각 부분, 또는 한 시대의 각 발전단계를 반영한다. 이러한 부분 또는 발전단계는 동태적(動態的)이다. “六爻之義易以貢에서 은 변화이며, ‘은 알려줌이다. 한강백은 에서 공은 알려줌이다. 六爻가 변화하여 이로써 길흉을 알려준다.” 라고 말하였는데 이것은 적절한 설명이다.

聖人以此洗心退藏於密, 吉凶與民同患, 神以知來, 知以藏往이 몇 구절은 의 효용을 말하고 있다. ‘이것으로써以此시와 괘로써라는 의미이다. ‘자를 󰡔경전석문(經典釋文)󰡕에 근거하여 볼 때 경방(京房)순상(荀爽)우번()동우(董遇) 촉재(蜀才) 등의 사람들이 모두 으로 썼다. 완원(阮元)󰡔십삼경주소교감기(十三經注疏校勘記)󰡕에는 으로 쓴 것도 있고, 로 쓴 것도 있다. 실제로 옛날에는 선과 세 두 자를 통용하였다. 여기의 洗心은 마땅히 先心으로 바꾸어서 이해해야 한다. 여기에서 先心退藏於密은 점 치기 이전에 이미 시와 괘의 이면에는 하늘의 도天之道백성의 일民之故이 은밀히 간직되어 있어서 점 칠 때는 단지 시와 괘의 이면에 간직된 사상이 나타날 따름이라는 말이다. “吉凶與民同患은 시와 괘의 효용은 길흉을 판단하는데 있기 때문에 사람들로 하여금 길함을 쫓고 흉함을 피하게 하려면 또한 점을 이용하여서 사람들의 행동을 인도해야 한다는 말이다. “與民同患은 길함을 쫓고 흉함을 피함이 곧 성인이 시와 괘를 만든 본 뜻이라는 말이다. 시와 괘를 백성을 위해서 쓰는 것이 바로 與民同患이다. “神以知來, 知以藏往에서 神以知來는 괘의 효용은 미래를 아는데 있다는 말이다. “知以藏往은 괘의 효용은 과거를 간직하는데 있다는 말이다. 일의 길흉은 알 수 없지만 점을 친 이후에는 비로소 길흉을 알 수 있다. 그러므로 시를 통해서 미래를 안다. 괘의 내용은 모두 점을 친 이후에 얻은 것이다. 그러므로 괘를 통해서 과거를 간직한다.

其孰能與於此哉다음 두 구절은 공자가 󰡔주역󰡕위편삼절(韋編三絶)’할 정도로 읽은 이후에 얻어낸 종합적 인식으로 󰡔주역󰡕의 미묘함에 대한 감탄이다. 공자는 󰡔주역󰡕이 매우 위대하고, 매우 교묘하다고 생각하였다. 󰡔주역󰡕을 지은 사람은 참으로 위대하다. 그는 단지 여러가지 방법으로 시와 괘를 썼지, 사람들이 순순히 통치를 받게 하려고 형벌을 사용하지는 않았다. 이러한 경지는 절대로 보통사람이 도달할 수 있는 것이 아니다. 이러한 경지는 다만 총명(聰明)예지(叡智)신묘한 무예神武가 있는데도 사람을 함부로 죽이지 않는 사람만이 도달할 수 있다.

 

 

是以明於天之道, 而察於民之故, 是興神物, 以前民用, 聖人以此齋戒, 以神明其德夫.

 

이래서 하늘의 를 밝히고, 백성의 일을 살피어 이에 신물(神物)인 시초를 일으켜서 백성의 쓰임에 앞서니 성인이 이로써 재계하여 그 사고수준이 신명(神明)한 경지에 도달한다.

 

是以明於天之道, 而察於民之故, 是興神物, 以前民用이 몇 구절은 실제로 시와 괘를 만들어서 사람들이 일을 처리할 때 응용하기 때문에 明於天之道, 而察於民之故가 전제조건이 된다는 말이다. “明於天之道는 자연법칙을 이해하는 것이다. “察於民之故는 사회법칙을 이해하는 것이다. ‘神物은 시와 괘이다. 이 몇 구절의 말과 윗 글의 󰡔󰡕何爲者也? 󰡔󰡕開物成務, 冒天下之道, 如斯而已者也는 앞뒤로 호응하여 󰡔주역󰡕은 철학저작임을 강조하여 설명한다. 그러므로 천박하게 󰡔주역󰡕은 단지 점치는 책이라고 생각해서는 안된다.

聖人以此齋戒以神明其德夫는 성인이 정성을 다하여 󰡔주역󰡕을 배우는 이유는 사고수준을 높이기 위함이란 말이다. ‘齋戒는 옛날 사람들의 제사용어이다. 이른바 致齋三日, 散齋七日에서 致齋라 부르고 散齋라 부르는데 모두 제사를 치를 때 정성을 다한다는 의미이다. ‘은 덕성(德性), 즉 사람의 사고수준이다. ‘神明其德은 사고수준을 향상시켜 최고의 경지에 도달할 수 있다는 의미이다. 옛날 사람들의 언어로 말하면 신명(神明)한 경지에 도달한다는 의미이다.

 

 

是故闔戶謂之坤, 闢戶謂之乾, 一闔一闢謂之變, 往來不窮謂之通. 見乃謂之象, 形乃謂之器, 制而用之謂之法, 利用出入, 民咸用之謂之神.

 

이런 까닭에 문을 닫는 것을 이라 하고, 문을 여는 것을 이라 하고, 한번 닫고 한번 열림을 이라 하고, 가고 옴이 다하지 않는 것을 이라 하고, 나타남을 이라 하고, 형성됨을 라 하고, 만들어 쓰는 것을 이라 하고, 쓰임을 이롭게 하여 들어가기도 하고 나오기도 하여서 백성이 모두 쓰는 것을 이라 한다.

 

공자는 계사전에서 세 번이나 변통(變通)’의 문제를 언급하였다. 이것으로 변통이 󰡔주역󰡕에서 매우 중요한 것임을 알 수 있다. 변통은 작용이고 건곤은 본체이다. 변통은 다른 것이 아니라 바로 건과 곤의 변통이다. 건곤의 변통에서 의 네가지 일이 나타난다. 건곤의 변통은 사람들이 쉽게 이해하지 못하기 때문에 흔히 볼 수 있는 문의 닫히고 열리는 운동을 비유로 든 것이다. 건곤의 변통은 바로 문의 닫히고 열리는 모습이다. 문이 닫히면 고요하고 은밀하다. 이것은 곤을 상징한다. 문이 열리면 움직이고 도달한다. 이것은 건을 상징한다. 문이 한번 닫히고 한번 열리는 작용이 바로 이다. 반드시 한번 닫히고 한번 열려야 한다. 만일 늘 열려 있거나 늘 닫혀 있다면 건곤도 없고 또한 변도 없다. 문이 그치지 않고 닫히고 열리는 것이 바로 변이다. 가고 옴往來이 끝이 없어서 계속 변하는 것이 바로 이다. 그렇다면 끝나는 때는 있는가 없는가? 있다. 변이 일정한 수준에 이르러 극점에 도달하는 것이 바로 이다. 예컨데 지나치게 하늘 높이 올라간 용은 후회함이 있다.” 가 바로 건괘(乾卦)의 끝()이다. 끝남은 바로 막 변하려고 하는 것인데, 이것이 질적인 변화質變이다. 변하면 통하는데, 통함은 양적인 변화量變가 시작하려는 것이다. 이하 네가지 일은 모두 문의 닫히고 열림, 즉 건곤의 변통으로부터 나온 것이다. 문은 볼 수 있다는 측면에서 말하면 이것이 이다. 문은 형태가 있다는 측면에서 말하면 이것이 이다. 상과 기에 따라 제작하고 응용한 것이 이다. 다시말하면 건곤이 변통하는 방법을 본받아서 예법와 가르침를 세우고, 국가를 다스린다는 말이다. 백성이 일상생활을 할 때라 하더라도 그들은 한치도 󰡔주역󰡕을 떠날 수 없어서 󰡔주역󰡕을 취하고 사용하지만 이러한 이치를 그들 스스로는 알지 못한다. 󰡔주역󰡕은 백성의 일용생활 가운데 두루 담겨 있어서 끝나는 경우가 없다. 이것이 바로 이다. 이 신은 분명히 귀신(鬼神)의 신이 아니다.

 

 

是故易有大極, 是生兩儀, 兩儀生四象, 四象生八卦, 八卦定吉凶, 吉凶生大業.

 

이러한 까닭에 에는 태극(太極)이 있으니, 이것이 양의(兩儀)를 낳고, 양의는 사상(四象)을 낳고, 사상은 八卦를 낳으니, 八卦는 길함과 흉함을 정하고, 길흉은 큰 사업을 낳는다.

 

大極은 마땅히 태극(太極)으로 읽어야 한다. 대극은 무엇인가? 대극은 바로 대일(大一)이다. 대일은 전체를 포괄하는 이며, 절대적인 이다. 󰡔설문(說文)󰡕에서 가장 먼저 나오는 자가 인데 허신(許愼)은 해설하여 말하기를 가장 처음은 대일이니 는 그 일에서 세워지며, 천지를 만들고 나누며, 만물을 변화시키고 이루어준다.” 라고 하였다. 허신의 설명은 󰡔주역󰡕의 사상에 부합한다. 는 무엇인가? 󰡔()󰡕 「용풍()백주(栢舟)에서는 진실로 나의 짝이구나!”라고 하였고, 󰡔모전(毛傳)󰡕에서는 는 짝이다.” 라고 하였다. 의에는 짝이라는 뜻이 있다. ‘兩儀는 바로 한 쌍이란 의미이며, 사물이 대립하고 통일하는 두 측면이다.

大極生兩儀는 바로 이 나뉘어 가 되는 것이다. 이것은 모순인 동시에 보편적 의미를 가지고 있어서 하늘과 땅天地〕․남편과 아내夫婦〕․임금과 신하君臣〕․어두움과 밝음幽明〕․낮과 밤晝夜〕․나아감과 물러남進退등으로 나타낼 수 있다. 그리고 이것은 섞여 있어서 아직 나뉘지 않은 대일이 천지 두 방면으로 나뉘어짐을 나타낸다.

易有大極, 是生兩儀, 兩儀生四象, 四象生八卦, 八卦定吉凶, 吉凶生大業.” 이 단락은 八卦를 생산하는 원리를 말하고 있으며, 하늘과 땅이 만들어져 나뉘며, 만물을 변화시키고 이루어주는 과정을 말하고 있다. 󰡔주역󰡕을 지은 사람은 팔괘의 생산원리와 천지만물의 생산과정이 일치한다고 생각하였다.

󰡔주역󰡕에서 양의는 바로 음양이다. 음은 ‘ ’로 표시하고 양은 ‘ ’ 로 표시한다. 이 두 개의 부호는 물리학에서 음전기와 양전기를 표시하는 부호인 ‘ - ’‘ + ’와 같은 것으로 신비한 점은 없다고 할 수 있다.

兩儀生四象의 생성방법은 또한 이 나뉘어 가 되는, 두 개의 부호 윗면에 두 개의 부호를 다시 겹쳐 태음(太陰)소양(少陽)소음(少陰)태양(太陽)이라고 부르는 사상(四象)을 낳는다.

四象生八卦의 생성방법도 여전히 이 나뉘어 가 되는, 즉 사상의 윗면에 하나의 ‘ ’ 부호와 하나의 ‘ ’ 부호를 각각 더해서 팔괘를 낳는다. 팔괘는 여덟가지 부호, ․ ․ ․ ․ ․ ․ ․ 이며, 이것은 각각 ()()()()()()()()’라고 부른다. 팔괘는 만물의 여덟가지 종류의 서로 다른 성질을 대표한다. 천지 사이의 모든 사물은 이 여덟가지 종류의 성질 가운데에 포괄된다. 설괘전에 따르면 여덟가지 종류의 성질은 하늘은 씩씩한 것, 땅은 순응하는 것, 우뢰는 움직이는 것, 바람은 들어오는 것, 물은 빠지는 것, 불은 걸리는 것, 산은 멈추는 것, 연못은 기뻐하는 것 이다. 팔괘가 대표하는 사물의 여덟가지 종류의 성질은 고도로 추상화한 것이다. 따라서 어느 곳에나 활용될 수 있고 안정되어 있어서 변하지 않는다.

八卦定吉凶, 吉凶生大業에서 八卦는 실제로 이미 64괘를 포괄하고 있다. 왜냐하면 만일 단지 팔괘만이 있다면 길흉을 정할 수 없고, 대업을 낳을 수 없기 때문이다. 계사전에서 말하는 팔괘는 흔히 64괘를 포괄한다. 64괘는 사람들에게 행동의 미래결과가 길한지 흉한지를 가리켜 준다. 또한 사람들이 길함을 쫓고 흉함을 피할 수 있으려면 어떻게 해야 하는지를 알려준다. 그리하여 세상사람들이 사업을 성취할 수 있도록 해준다.

마땅히 지적해야 할 것은 계사전의 이 몇 구절이 󰡔주역󰡕의 우주관을 나타내고 있다는 점이다. 󰡔주역󰡕은 대극대일이 우주의 본체라고 보았으나 대극대일의 이전이 무엇인지 말하지 않았다. 󰡔주역󰡕은 우주의 본원문제를 추구하지 않았는데, 이것은 대극대일은 시작됨開始이 없어서 본래부터 존재한 것이라는 의미이다. 이것은 당연히 유물주의의 우주관이다. 우주관 문제에 있어서 󰡔주역󰡕󰡔노자󰡕와 근본적으로 대립한다. 송대(宋代)사람 장재(張載)위대한 역은 유무를 말하지 않으니, 유무를 말함은 여러 학자의 누차함이다.” 라고 하였다. 장재는 󰡔주역󰡕󰡔노자󰡕와 다른 점을 명백히 밝혔다. 󰡔노자󰡕에는 세상만물은 유에서 나왔고, 유는 무에서 나왔다.” 라고 말한다. 또한 을 낳고, 를 낳고, 을 낳고, 은 만물을 낳는다.”라고 말한다. 󰡔노자󰡕에서 말한 는 곧 이고, ‘는 곧 이다. ‘’, 대일의 앞에 ’, 를 첨가하였다. 그래서 우주는 본원이 있는 것으로 생각하여 우주에는 본래 유가 없었으나 그 뒤에 무로부터 말미암아 유가 나왔다고 생각하였다. 󰡔노자󰡕의 우주관은 분명히 유심론이다.

 

 

是故法象莫大乎天地, 變通莫大乎四時, 懸象著明莫大乎日月, 崇高莫大乎富貴. 備物致用, 立成器以爲天下利, 莫大乎聖人. 索隱, 鉤深致遠, 以定天下之吉凶, 成天下之미미, 莫大乎蓍龜 .

 

이렇기 때문에 본받음法象은 하늘과 땅보다 더 큰 것이 없고, 변하여 통함變通은 네 계절보다 더 큰 것이 없고, 을 나타내서 뚜렷히 밝힘은 해와 달보다 더 큰 것이 없으며, 숭고함은 부귀보다 더 큰 것이 없다. 시초를 갖추어 쓰임을 다하고, 괘를 수립하고 이루어 천하를 이롭게 함은 성인보다 더 큰 것이 없다. 복잡하고 어지러운 것을 끄집어 내고, 은밀하고 편벽한 것을 찾아내며, 헤아릴 수 없는 것을 정성스럽게 취하고, 쉽게 이룰 수 없는 것을 미루어 나가 구하여 세상의 길흉을 정하며 세상이 부지런하도록 이루어 주는 것은 시구(蓍龜)보다 더 큰 것이 없다.

 

法象莫大乎天地는 세상에서 본받을法象수 있는 것은 하나가 아니지만 그러나 이 가운데 하늘과 땅이 가장 크다는 말이다. 󰡔주역󰡕은 하늘과 땅을 본받아서 처음은 건이며 그 다음은 곤首乾次坤’, 나아가 군주는 높고 신하는 낮다君尊臣卑’, ‘아버지는 높고 자식은 낮다父尊子卑’, ‘지아비는 높고 지어미는 낮다夫尊妻卑의 관계를 확정하였다.

變通莫大乎四時는 세상에서 變通을 반영할 수 있는 것은 하나가 아니지만 그러나 네 계절이 가장 크다는 말이다. 네 계절의 바뀜이 옛날 사람들이 볼 수 있었던 가장 큰 변통이었기 때문에 󰡔주역󰡕에서 말하는 변통은 모두 네 계절을 근거로 삼았다.

懸象著明莫大乎日月은 세상에서 표현할 수 있는 하늘과 땅네 계절의것은 하나가 아니지만 그러나 해와 달이 가장 크다는 말이다. 이 세 구절에서는 하늘의 도天道, 즉 자연계를 말하였고, 그 다음 세 구절에서는 백성의 일人事, 즉 사회를 말하였다. 중점은 뒤 세 구절에 있다.

崇高莫大乎富貴는 세상에서 숭고한 것은 하나가 아니지만 그러나 부귀를 큰 것으로 생각한다는 말이다. ‘부귀는 군주의 세력과 지위를 가리킨다. 군주의 세력과 지위는 가장 숭고하기 때문에 모든 큰 문제는 이것을 통해서만 해결된다. 󰡔주역󰡕에서 천() 삼재(三才)를 말할 때는 천지자연도 중시하지만, 이보다 더욱 더 사람을 중시하여 사람은 천지와 더불어 참여할 수 있다고 말한다. 󰡔주역󰡕에서 말하는 사람은 계급사회에서의 사람, 즉 천자(天子)제후(諸侯)()()대부(大夫)를 가리키는 것이지, 일반백성의 의미가 아니다.

備物致用, 立成器以爲天下利, 莫大乎聖人에서 자 아래에 빠진 글이 있는 것 같다. ‘성인󰡔주역󰡕을 지은 사람을 가리킨다. ‘備物致用立成器는 시와 괘를 가리킨다. 성인 역시 사람이다. 그러나 성인은 󰡔주역󰡕을 지을 수 있어서 하늘의 도백성의 일에 대한 정보를 괘효 가운데에 집어넣어 사람들이 때에 따라 사용하도록 제공하고, 세상 사람들의 문제를 해결한다.

索隱, 鉤深致遠, 以定天下之吉凶, 成天下之미미, 莫大乎蓍龜.” 에서 은 복잡하고 어지러움雜亂이다. ‘은 은밀하고 편벽함隱僻이다. ‘은 끄집어 냄抽出이다. ‘은 찾음尋求이다. ‘은 헤아릴 수 없음不可測, ‘은 쉽게 이를 수 없음不易至을 의미한다. ‘는 정성을 다하여 취함曲而取之, ‘는 미루어 나아가 구함推而求之을 의미한다. ‘미미는 힘써 노력함勉勉이란 의미이다. ‘蓍龜는 점치는 것을 가리킨다. 는 여기서 별 의미가 없는데, 󰡔주역󰡕에서는 시초(蓍草)를 사용하여 점을 치는 방법(의 방법)은 사용하지만, 갑골(甲骨)을 사용하여 점을 치는 방법(의 방법)은 사용하지 않는다. ‘시구라고 말한 이유는 단지 말의 음절을 맞추기 위해서이다. 이 단락 전체는 세상 사람들이 의심하거나 어렵게 여기는 문제는 점을 쳐서 가장 잘 해결할 수 있다는 말이다. 즉 복잡하고 어지러운 문제, 깊이 생각해야 할 문제, 숨어 있어서 밝히기 어려운 문제등 어떠한 문제라 할지라도 󰡔주역󰡕은 모든 것을 파악할 수 있으며, 밝혀 낼 수 있다. 따라서 󰡔주역󰡕은 세상의 길흉을 정하고, 사람들에게 길함을 쫓고 흉함을 피할 수 있는 방향을 알려주는 한편, 사람들이 신심(信心)을 굳게 지키고 계속 발전할 수 있도록 고무(鼓舞)한다.

 

 

是故天生神物, 聖人則之. 天地變化, 聖人效之. 天垂象, 見吉凶, 聖人象之. 河出圖, 洛出書, 聖人則之.

 

이런 까닭에 하늘이 시초神物을 낳았으니 聖人은 이것을 본받는다. 하늘과 땅이 변화하니 성인은 이것을 본받는다. 하늘이 을 드리워 길흉을 나타내니 성인은 이것을 본받는다. 황하河水에서 용마의 그림이 나오고 낙수(洛水)에서 거북이 등에 새긴 글이 나왔으니 성인은 이것을 본받는다.

 

성인󰡔주역󰡕을 지은 사람을 가리킨다. 성인은 자신의 사심(私心)이 이끄는데로 󰡔주역󰡕을 짓지 않았다. 성인은 헤아리고 본받아서 󰡔주역󰡕을 지었다. 하늘은 신물(神物)인 시초를 낳았으니 성인은 이것을 헤아려서 시초와 시초의 에 근거하여 효와 괘를 만든다. 천지만물의 변화는 끝이 없으니 성인은 이것을 본받는다. 이에 따라 건곤이 정해지고 만물이 생겨난다乾坤定矣, 萬物生焉한다.

天地變化, 聖人效之󰡔󰡕與天地准과 같은 의미이다. 󰡔주역󰡕64괘에서 건곤 두 괘는 하늘과 땅을 상징하고 나머지 62괘는 만물을 상징한다. “有天地然後萬物生焉은 건곤 두 괘가 있은 다음에 나머지 모든 괘를 생겨났다는 말이다..

天垂象, 見吉凶, 聖人象之. 河出圖, 洛出書, 聖人則之이 몇 마디 말은 후세 사람들이 첨가한 것이지 계사전원문은 아닌 것 같다. 왜냐하면 󰡔주역󰡕에서 말하는 길흉은 곧 괘를 풀고 상을 관찰하여 생긴 것으로 天垂象과는 관계가 없기 때문이다. 하물며 󰡔주역󰡕 64384효의 모든 괘사와 효사에서도 길흉을 하늘의 모습天象에 따라 단정할 수 있는 것이라고 말한 적이 없는데 어떻게 聖人象之라고 말할 수 있는가! “河出圖, 洛出書는 더욱 더 󰡔주역󰡕과 관계없는 말이다. 맥락이 연결되지 않는데 어떻게 聖人則之라고 말할 수 있는가! 또한 윗 글에서 이미 天生神物, 聖人則之라고 말했기 때문에 여기에서 다시 河出圖, 洛出書, 聖人則之라고 말할 필요가 없다. 말에는 새로운 의미가 없고, 글 또한 간결하지 않으니 계사전의 글과 같은 종류가 아니다. 그러므로 이 단락은 분명히 한대(漢代) 점술가의 글이다.

 

 

󰡔󰡕有四象, 所以示也. 系辭焉, 所以告也. 定之以吉凶, 所以斷也.

 

󰡔주역󰡕에 네 가지 이 있음은 보이기 위함이다. 말을 붙인 것은 알려주기 위함이다. 길흉으로써 정한 것은 판단하기 위함이다.

 

이 세 구절의 말은 윗 글과 서로 연결되지 않는다. 장의 순서가 잘못된 것 같다. ‘사상(四象)’은 노음(老陰)노양(老陽)소음(少陰)소양(少陽)을 말한다. 만사만물은 음양 두 측면을 떠날 수 없다. 한번 움직이고 한번 고요하며一動一靜, 한번 나아가고 한번 물러나며一進一退, 한번 올라가고 한번 내려가며一上一下, 한번 밝고 한번 어두우니一明一晦음양 아닌 것이 없다. 󰡔주역󰡕을 지은 사람은 음양을 괘로 그려서 사람들에게 길흉을 보여주었다. 처음에는 단지 괘와 효가 있었으나 그 후에 어떤 사람이 괘효의 아래에 말을 붙였고, 길흉득실을 직접 문자로 표시하여 사람들에게 알려 주었다. 사람들에게 길흉을 보여주고 알려주어 사람들이 상황에 근거해서 스스로 길흉을 판단하게 하였다. 그러나 󰡔주역󰡕은 길흉의 표준이 한결같지 않아서 이해(利害)를 길흉이라고 할 때도, 사태의 변화를 길흉이라고도 할 때도, 의명(義命)을 길흉이라고도 할 때도 있기 때문에 길흉은 성인이 아니면 단정할 수 없다. 괘사와 효사에서는 길흉을 명확하게 지적한다. 예를 들자면 정벌함이 길하다征吉〕․정벌함이 흉하다征凶〕․크게 길하다大吉〕․끝이 길하다終吉〕․흉함이 있다有凶〕․끝이 흉하다終凶와 같은 것으로 역을 쓰는 사람이 쉽게 알 수 있다.

 

 

12

 

󰡔󰡕, 自天祐之, 吉无不利. 子曰, 祐者助也. 天之所助者順也. 人之所助者信也. 履信思乎順, 又以尙賢也. 是以自天祐之, 吉无不利也.

 

󰡔주역󰡕에 말하기를 하늘이 도와 하여 이롭지 않음이 없다.”라고 하였다. 孔子가 말하였다. 란 도와주는 것이다. 하늘이 도와주는 것은 따르기 때문이다. 사람이 도와주는 것은 미더웁기 때문이다. 미더움을 실천하여 따를 것을 생각하고, 또한 그것으로 어진 사람을 숭상한다. 이래서 하늘이 도와주어 하여 이롭지 않음이 없다.

 

여기에서 不言而信, 存乎德行까지가 제12장으로 계사전상의 마지막 장이다. 12장의 처음 구절은 공자가 대유괘(大有卦) 上九爻를 해석한 말이다. 주희(朱熹)는 이 구절이 잘못 끼인 것으로 의심하여 제8장에서 연이어 설명하는 중부(中孚)동인(同人)대과(大過)()()()() 이 일곱괘의 일곱 효사가 뒤에 있어야 한다고 하였다.

이 단락의 말은 대유괘 上九 효사를 해석한 것이다. 공자의 이해에 따르면 대유괘 상구효에서 말한 하늘로부터 도우니 길하여 이롭지 않음이 없다.”는 실제로 六五효를 말한다. 육오 효사인 그 믿음이 사귀듯이 하니 위엄으로 하면 길하리라.” 의 의미는 상구효를 거쳐서 완전하게 표현된다. 그러므로 육오효 또한 대유괘를 이루는 중요한 것으로 육오효의 길함이 바로 대유괘의 길함이다. 상구효는 대유괘의 끝으로 대유괘의 길함은 상구효에서 완성된다. 상구효의 길함은 상구효의 길함으로 그치지 않기 때문에 실제로 대유괘 전체의 길함이다. 上爻로서 다른 五爻의 뜻을 매듭하는 이러한 정황은 64괘 가운데 매우 많이 있는데 거의 󰡔주역󰡕의 통례라고 할 수 있다. 육오효는 무엇 때문에 하늘의 도움을 얻을 수 있어서 길하여 이롭지 않음이 없는가? 육오효는 그 믿음이 사귀듯이 하다厥孚交如이므로, 충분히 신의를 지킬 수 있다. 즉 육오효는 가운데에 거하여 양효의 자리인데도 부드러움을 쓰니 충분히 따름을 생각한다. 한 효는 부드럽고 다섯 효는 강하여 오직 상구효만이 육오효 위에 있으나 다섯효는 충분히 육오효의 어짐을 받들 수 있다. 신의를 지키고, 따름을 생각하고 또 어짐을 받들기 때문에 사람이 돕고 하늘 또한 돕는다. 하늘과 사람이 모두 돕기 때문에 당연히 길하여 이롭지 않음이 없다.

 

 

子曰, 書不盡言, 言不盡意. 然則聖人之意其不可見乎? 子曰, 聖人立象以盡意, 設卦以盡情僞, 繫辭焉以盡其言, 變而通之以盡利, 鼓之舞之以盡神.

 

공자가 말하였다. 글은 말을 다하지 못하며, 말은 생각을 다하지 못하니 그러면 성인의 생각을 볼 수 없는가? 공자가 말하였다. 성인은 상을 세워서 생각을 나타내고, 괘를 베풀어 참과 거짓을 가려내며, 을 붙여서 그 말을 다하고, 변화하여 통하여 이로움을 다하고, 북치고 춤추게하여 을 다한다.

 

이 단락에서 말한 중심사상은 󰡔주역󰡕이 상을 세우고立象, 괘를 베풀고設卦, 말을 붙인繫辭필요성과 중요성에 대한 강조이다. ‘는 책書冊이고, ‘은 언어이고, ‘는 사상(思想)이다. 책은 언어를 기록하는 것이지만, 언어 전부를 기록할 수 없다. 언어는 사상을 표현하는 것이지만, 사상을 완전히 표현할 수 없다. 사람들은 사상을 언어에 의지해서 표현하려 하고 책에 의지해서 기재하려 한다. 그러나 언어와 책은 모두 한계가 있다. 그렇다면 성인은 어떻게 이러한 한계를 극복하고 󰡔주역󰡕을 지었는가? 책과 언어의 한계를 극복하는 방법이 立象以盡意, 設卦以盡情僞, 繫辭焉以盡其言, 變而通之以盡利, 鼓之舞之以盡神이다. 󰡔주역󰡕을 지은 사람이 사상을 표현하는 이러한 방법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入象이다. 󰡔주역󰡕에서의 음효와 양효가 이다. 건은 하늘과 말을 상징하며, 곤은 땅과 소를 상징하는데 이것이 상이다. 예를 들면 수레가 바뀌살이 빠지는 것, ‘호랑이 꼬리를 밟는 것, ‘칠일만에 얻으리라, ‘정벌에 나가 삼년만에 이기니 가 모두 상이다. 상의 특징은 생동감이 있다는 것, 보편성을 갖추고 있다는 것이며, 대수학(代數學)의 문자부호인 abcxyz 와 매우 비슷하여 어떠한 수라도 대표할 수 있다는 것이다. 󰡔주역󰡕입상을 통하여 많은 사물을 표현하고, 복잡한 사상을 반영하여 언어의 한계를 극복할 수 있다. ‘괘를 베푸는 것設卦은 실제로 상을 세우는 것立象이며 참과 거짓을 가려내는 것盡情僞는 또한 사상을 다하는 것盡意이다. ‘設卦란 말은 立象이란 말보다 더욱 진일보한 것으로, 한 괘는 더욱 복잡하고 더욱 정비된 집합적인 상이다. 한 괘에서는 더욱 높은 차원의 盡意를 할 수 있다. ‘진의는 곧 참도 있고 거짓도 있는 상황에 내재하고 있는 복잡한 사상을 포괄하여 표현할 수 있다.

繫辭焉以盡其言은 괘 다음에 괘사를 매었고, 효 다음에 효사를 매었으나 괘사와 효사는 다른 것이 아니라 본 바탕은 바로 괘상(卦象)과 효상(爻象)을 문자로 표현한 것이라는 말이다. 윗 글에서 말한 書不盡言과 여기서 말한 繫辭焉以盡其言은 말이 서로 모순된 것 같으나 사실은 일치한다. 이 말은 책으로는 말을 다 기록할 수 없기 때문에 생각을 다 나타낼 수 없는 반면, 로는 오히려 말을 다할 수 있기 때문에 생각을 다 나타낼 수 있다는 의미이다. 여기서 󰡔주역󰡕의 괘사와 효사이며 상을 표현한 것으로, 일반적으로 책이라고 하는 것과는 같지 않다.

變而通之以盡利에서 은 효가 본래 길하지 않아도 변하여 길이 될 수 있다는 말이다. 한편 효가 본래 길하여도 변하여 흉이 될 수도 있다. 길하지 않음이 바로 이며, 변하여 길하게 됨이 바로 이다. 󰡔주역󰡕의 의도는 사람들이 길함을 쫓고 흉함을 피하며, 이로움을 쫓고 해로움을 피할 수 있도록 인도하는데 있다. 그래서 變而通之以盡利라고 말한다. 왕필(王弼)󰡔주역약례(周易略例)󰡕에서 괘란 때이다. 효란 때에 맞게 변하는 것이다.”, “그러므로 괘가 반대되면 효 또한 모두 변한다. 그러므로 씀에는 일정한 법칙이 없고, 일에는 법도가 없어서 움직이거나 고요하던지, 굽히거나 펴니,오직 변함만이 적합하다.” 라고 말한 것은 여기의 變而通之以盡利의 해설로 볼 수 있다.

鼓之舞之以盡神에서 鼓之舞之는 점을 쳐서 괘를 구할 때에 49개 시초를 다루는 동작을 가리킨다. 󰡔장자(莊子)󰡕 「인간세(人間世)에 있는 고책()’이란 단어를 최선()시초를 세는 것設蓍이라고 해석했는데, 시초를 세는 것은 곧 점을 쳐서 괘를 구하는 것이다. ‘以盡神에서 은 당연히 陰陽不測之謂神의 신이다. 점을 치는 것이 곧 북치고 춤추는 것鼓之舞之으로 그 목적은 괘를 구하는 것이고, 괘를 구하는 실질은 六爻에서 初爻부터 上爻에 이르기까지 어느 것이 음이 되고 어느 것이 양이 되는지를 확정하는 것이다. 결국 어느 것이 음이 되고 어느 것이 양이 될지는 전혀 예측할 수 없어서 상당히 우연적이다. 이 우연성이 곧 이다. ‘鼓之舞之의 목적과 작용은 바로 의 자세한 의의를 충분히 표현하는 것이다.

 

乾坤其󰡔󰡕之縕耶? 乾坤成列而󰡔󰡕立乎其中矣. 乾坤毁則无以見󰡔󰡕. 󰡔󰡕不可見, 則乾坤或幾乎息矣.

 

건곤은 󰡔주역󰡕의 온축인가? 건곤이 열을 이루어 󰡔주역󰡕이 그 가운데 수립한다. 건곤이 무너지면 󰡔주역󰡕을 볼 수 없다. 󰡔주역󰡕을 볼 수 없으면 건곤이 거의 멈춘다.

 

과 통용되니 깊이 쌓아둠蘊藏이란 뜻이다. “乾坤其󰡔󰡕之縕은 건곤 두 괘는 󰡔주역󰡕의 심오함이어서 󰡔주역󰡕은 건곤 두 괘 가운데 온축되어 있다는 말이다. 󰡔역위(易緯)󰡕 「건착도( 乾鑿度)건곤이란 음양의 근본이요, 만물의 조종(祖宗)이다 라고 했는데 뜻이 이와 같다. 󰡔주역󰡕64괘는 건곤 두 괘가 발전변화한 결과이므로 역은 건곤 두 괘 안에 온축되어 있다고 말할 수 있다.

乾坤成列, 󰡔󰡕立乎其中矣는 윗 구절을 풀어 해석한 것이다. 󰡔주역󰡕을 지은 사람은 하늘은 높고 땅은 낮다天尊地卑의 원칙을 본받아 건곤 두 괘를 64괘의 처음에 놓고, 또 건을 먼저, 그 다음에 곤을 놓았다. 건곤 두 괘가 이러한 지위와 서열로 확정되어서 󰡔주역󰡕역시 이에 따라 바로 확정되었다.

乾坤毁則无以見󰡔󰡕은 진일보하여 󰡔주역󰡕과 건곤의 관계를 자세히 설명한 것이다. 󰡔주역󰡕과 건곤은 비록 이름은 같지 않으나 실질적으로는 같다. 󰡔주역󰡕의 도는 건곤안에 온축되어 있기 때문에 건곤은 가 있으나 󰡔주역󰡕의 도는 가 없다. 건곤은 체가 있기 때문에 이루어짐과 무너짐의 문제가 있다. 위에서 말한 成列과 여기서 말한 는 이루어짐과 무너짐을 대조하여 말한 것이다. 󰡔주역󰡕의 도는 체가 없기 때문에 건곤에 의탁해야 한다. 그래서 건곤이 서열을 이루면 󰡔주역󰡕의 도는 그 가운데에 수립된다. 반면에 만일 건곤의 체가 무너지면 을 볼 수 없다. 또한 건곤 두 괘의 발전변화과정이 일단 완성되면 역의 생명은 종말을 고하게 된다. 바꾸어 말하면 易不可見, 乾坤或幾乎息矣이다. 이 발전하여 기제괘(旣濟卦)미제괘(未濟卦)에 이르게 될 때는 볼 수가 없고, 역의 발전과정이 끝나려고 하니 건곤 두 괘의 변화 역시 멈추게 될 것이다. 그러나 幾乎息이란 그침에 접근한 것이지 실제로는 결코 멈춘 것이 아니며, 멈출 수도 없다. 64괘의 마지막 괘는 미제괘이다. 미제괘는 건곤의 변화과정이 끝나려 하고 그치려는 것과 비슷함을 나타내나, 실제로는 끝나지도 그치지도 않음을 의미한다. 그러므로 서괘전에서 사물은 다할 수 없기 때문에 그것을 미제괘로 받아서 끝마친다.”라고 말한다.

 

是故形而上者謂之道, 形而下者謂之器, 化而裁之謂之變, 推而行之謂之通, 擧而措之天下之民, 謂之事業.

 

이런 까닭에 형이상의 것을 라 하고, 형이하의 것을 라 하며, 변화하여 마름질하는 것을 이라 하고, 바뀌어 나아가는 것을 이라 하며, 들어서 세상 사람들에게 조치하는 것을 사업이라 한다.

 

물은 모두 형태와 성질形質이 있다. 형질 이상이 이며, 형질 이하가 이다. 기와 도는 서로 떨어질 수 없어서 실질적으로는 한가지 것이다. 기 또한 도이며 도 역시 기이다. 두 개가 다만 형질 상하(上下)로 경계를 나눴을 따름이다. 한 사물의 형태와 자취가 기이며 그 속에 존재하는 도리가 곧 도이다. 󰡔주역󰡕으로 말하자면 괘효와 음양은 형태와 자취가 있으니 기이다. 음양이 번갈아 작용하며, 항상 변동하여 잠시 음이었다가 또 잠깐 사이에 변하여 양이 된다. 이렇게 음양이 끊임없이 변화하는 것이 바로 도이다.

그 다음으로 말한 事業은 모두 인위적인 각도에 따라 말한 것이다. 성인이 어떻게 󰡔주역󰡕의 도를 따르고 제약해서 인간의 사업에 응용하는지를 말한 것이다. “化而裁之謂之變에서 는 저절로 그러한 변화이며, 점차적이며 느린 변화이다. 이것은 오늘날 이른바 양적인 변화量變라고 한다. ‘는 인위적인 것이다. 자연적이며 점차적으로 진행하는 양적인 변화가 일정한 수준에 도달한 때에 인위적으로 옳고 그름을 따지고 결정하여 질적인 변화質變를 완성하게 한다. 과거의 질이 변화하여 새로운 질이 된다. 과거의 질이 변화하여 새로운 질이 되는 질적인 변화가 바로 여기서 말하는 이다. 예를 들어 말하자면, 64괘 내에서 즉 건괘곤괘에서 기제괘미제괘에 이르기까지 한 괘가 변하여 다른 한 괘가 되는 것은 모두 변화하고 마름질한 로 말미암아 에 이르는 과정이다. 한 괘에서 初爻부터 上爻에 이르는 것을 , 곧 양적인 변화라고 할 수 있다. 이 한 괘가 마침내 다른 한 괘로 변하는 것이 곧 질적인 변화이다. 서괘전에서 말한 우뢰란 움직이는 것이다. 만물은 끝까지 움직일 수 없어서 멈춘다. 그러므로 간괘로써 받는다 에서 우뢰은 움직이는 것이며, 움직이면 반드시 멈출 때에 이르러서 멈춘다. 이것이 바로 이다. ‘멈춘다止之는 것은 바로 마름질한다는 의미이다.. 마침내 진괘로 말미암아 간괘에 이르는 것이 바로 이다. ‘은 화와 재, 양 측면을 포괄한다.

推而行之謂之通에서 자는 변하여 나간다推移는 의미이며, ‘자는 조금도 정체함이 없어서 운용함이 끝이 없다는 의미이다. 사물이 발생하여 질적인 변화를 한 후에도 계속 발전변화함이 바로 통이다. 낮과 밤晝夜이 서로 바뀌어서 하루가 되고, 추위와 더위寒暑가 서로 바뀌어서 일년이 되며, 굳셈과 부드러움剛柔이 서로 바뀌어서 한 괘가 된다. 바로 이것이 窮則變, 變則通의 과정이다. 낮과 밤추위와 더위굳셈과 부드러움 등등이 서로 바뀌면 은 곧 그 가운데에 있다. 여기에서 변과 통은 서로 긴밀하게 연계하기 때문에 따로따로 나눌수 없다.

擧而措之天下之民, 謂之事業성인󰡔주역󰡕에 있는 변통의 도리를 가지고 국가의 인사(人事)에 응용함이 바로 성인의 사업이란 말이다.

 

是故夫象, 聖人有以見天下之, 而擬諸其形容, 象其物宜, 是故謂之象; 聖人有以見天下之動, 而觀其會通, 以行其典禮, 繫辭焉以斷其吉凶, 是故謂之爻.

 

이런 까닭에 은 성인이 천하의 깊은 이치를 보아 그 형용을 본뜨며, 그 사물에 알맞게 형상하니 이런 까닭에 상이라 한다. 성인이 세상의 움직임을 보고 그 모두 통하는 것을 살펴 그 모범적인 규칙을 행하며, 말을 붙여서 그 길흉을 판단하니 이런 까닭에 라고 한다.

 

이 단락의 글은 위에 이미 있는데도 이렇게 거듭 나왔다. 아마도 아랫문장을 말하기 위해서 넣은 것 같다.

 

極天下之者存乎卦, 鼓天下之動者存乎辭, 化而裁之存乎變, 推而行之存乎通, 神而明之存乎其人. 黙而成之, 不言而信 存乎德行.

 

세상의 깊은 이치를 모 밝히는 것은 괘에 있고, 천하의 움직임을 부추기는 것은 에 있고, 하여 마름질하는 것은 에 있고, 바꾸어 행하는 것은 에 있고, 신묘하여 밝히는 것은 그 사람에게 있다. 묵묵하게 이루며, 말하지 않아도 미더운 것은 그 덕행에 있다.

 

앞의 두 구절은 괘와 효의 작용을 말한다. 세상의 매우 깊은 이치를 끝까지 연구하는 것이 괘이고, 세상의 변동을 부추기고 밝히는 것이 효이다. 그 이하 네 개의 자는 사람이 󰡔주역󰡕과 관계를 맺을 때, 󰡔주역󰡕을 쓰는 사람 자신이 어째서 중요한지를 강조하고, 사람의 주체적 능동성이 결정적인 작용을 일으킨다는 것을 설명한다.

윗 글에서 말한 化而裁之謂之變推而行之謂之通󰡔주역󰡕을 지은 사람에 맞추어 말한 것이고, 여기서 말한 化而裁之存乎變, 推而行之存乎通󰡔주역󰡕을 쓰는 사람에 맞추어 말한 것이다. ‘存乎變存乎通󰡔주역󰡕을 쓸 때 변을 주의하고 통을 주의할 것을 말한 것이지, 󰡔주역󰡕의 본래 모습에 변과 통이 있다고 말한 것은 아니다.

神而明之存乎其人은 사람들이 󰡔주역󰡕을 쓸 때는 󰡔주역󰡕에 대한 분석이 똑같지 않아서 어떤 사람은 으로 보고, 어떤 사람은 라고도 보기 때문에 어떻게 해야 비로소 神而明之에 도달할지는 사람에게 달려있지 󰡔주역󰡕에 있지 않다는 말이다.

黙而成之, 不言而信, 存乎德行에서 은 묵묵해서 말하지 않음이다. 은 사업을 성취함이다. 이러한 사람은 말하지 않아도 미더워서不言而信󰡔주역󰡕을 깊이 이해하여, 그 사상은 󰡔주역󰡕의 이치와 은연중에 들어 맞는다. 󰡔순자(荀子)󰡕 「대략(大略)에서 말한 󰡔주역󰡕을 잘 아는 사람은 점치지 않는다 의 대체적인 의미가 바로 이 의미이다. 󰡔주역󰡕을 쓰는 사람이 이러한 경지에 도달할 수 있는 이유는 그의 덕행이 숭고하다는데에 단서가 있고, 평소에 수양을 잘하기 때문이다. 이러한 사람이 󰡔주역󰡕을 써야 뜻을 얻고 상을 잊는得意忘象의 경지에 올바르게 도달할 수 있다.

 

 

繫辭전하

 

1

 

八卦成列, 象在其中矣. 因而重之, 爻在其中矣. 剛柔相推, 變在其中矣. 繫辭焉而命之, 動在其中矣.

 

팔괘가 열을 이루니 이 그 가운데에 있다. 그것에 따라 포개니 가 그 가운데에 있다. 굳셈과 부드러움이 서로 바뀌니 변화가 그 가운데에 있다. 말을 붙여서 명령하니 행동이 그 가운데에 있다.

 

여기에서 理財正辭禁民爲非曰義까지가 계사전하(繫辭傳下)제일장이다.

八卦成列, 象在其中矣에서 八卦는 바로 󰡔󰡕有大極, 是生兩儀, 兩儀生四象, 四象生八卦의 하나가 나뉘어 둘이 되는 방법에 의해 생성된 여덟개의 三劃卦이다. ‘成列은 한 열을 이루는 것으로 실제로는 팔괘가 생산됨을 말한다. 팔괘가 생산되면 상 또한 바로 그 가운데에 있다. 󰡔주역󰡕은 상을 통하여 사상(思想)을 표현하고 문제를 설명한다. 이것이 󰡔주역󰡕이 다른 책과 근본적으로 구별되는 점이다. 상은 팔괘 가운데에 있고, 또한 64괘 가운데에도 있으며, 󰡔주역󰡕안 곳곳에 모두 있다. “八卦成列, 象在其中은 상이 단지 팔괘 가운데에만 있지 64괘 가운데에는 없다는 말이 아니다. 상은 팔괘가 생성되는 때에 이미 있음을 말한 것이다. 설괘전에 따르면 팔괘는 세상 만사만물의 여덟가지 종류의 성질, 하늘은 씩씩한 것, 땅은 순응하는 것, 우뢰는 움직이는 것, 바람은 들어오는 것, 물은 빠지는 것, 불은 걸리는 것, 산은 멈추는 것, 연못은 기뻐하는 것이다. 이 여덟가지 종류의 성질은 변하지 않는 것이다. 만사만물은 모두 이 여덟가지 종류의 성질안에 포함시킬 수 있다. 그러나 팔괘가 상을 취함은 오히려 생동감이 있고 변화가 많아서, 단지 적절하게 이것의 성질을 표현할 수 는 있으나, 상을 취하는 어떠한 사물이 어떻게 진행할지는 일정하지 않다.

因而重之, 爻在其中矣에서 은 팔괘에 따른다는 말이며, ‘因而重之는 바로 팔괘를 근거로 해서 포개어 64괘가 된다는 말이다. ‘因而重之는 팔괘의 각 괘 위에 다시 팔괘의 한 괘를 각각 포개면 64괘가 된다는 말이다. ‘因而重之의 방법은 󰡔󰡕有大極, 是生兩儀, 兩儀生四象, 四象生八卦의 방법과 다르다. 송대(宋代)사람 소옹(邵雍)64괘의 형성은 가일배법(加一倍法)에서 나온다고 말하였는데 이것은 옳지 않다. 64괘의 형성에서 사용한 것은 因而重之의 방법, 곧 팔괘에 각각 팔괘를 포개는, 8×8해서 64를 얻는 방법이다. 64괘는 한번에 완성된 것이지 그 사이에 팔괘가 16괘를 낳고, 16괘가 32괘를 낳고, 32괘가 64괘를 낳는 과정은 본래 없다. “爻在其中矣는 팔괘에는 아직 효가 있다고 말할 수 없고, 64괘에 이르러야 비로소 효의 문제가 있다는 말이다. 64괘의 각 괘는 모두 六爻로 구성된다. 곧 이른바 六位時成이 그것이다. 우리들은 팔괘에서 각각의 한 괘에 삼효가 있다고 말하지 않는다. 이것은 팔괘는 그 작용의 측면에서 볼 때 64괘와 근본적인 구별이 있기 때문이다. 팔괘는 단지 초보적인 것으로 만사만물로 분할하려는 다른 성질의 여덟가지 큰 종류이다. 한 종류에 속해있는 사물의 성질은 수 많은 상을 취하여 표현할 수 있다. 따라서 정태적으로 객관세계를 표현하면 그것에는 발전변화의 의미는 없고 시간성도 없다. 64괘는 각각이 상당히 다르다. 64괘는 동태적 각도에 따라 세계를 반영한다. 세계는 64괘 안에서 낳고 또 낳아 그침이 없고生生不息, 끊임없이 변화하기 때문에 끊임없는 과정으로 묘사된다. 64괘는 실제로 객관세계, 특히 인류사회를 64개의 단계로 나눈 것이다. 한편 이것은 차례대로 이어지는 각각의 시대이다. 한편 시대는 발전변화하며 발전변화는 효에 반영된다. 그러므로 64괘가 한번 형성되면 효 또한 바로 그 안에 있다고 말한다. 간단히 말하자면 三劃卦에서 효를 말하지 않는 이유는 삼획괘는 사물의 변화를 반영하지 않기 때문이다. 六劃卦에서 효를 말하는 이유는 육획괘은 사물의 변화를 반영하기 때문이다.

剛柔相推, 變在其中矣는 효는 이미 변화를 표현한 것이므로 그 본 모습은 반드시 변화한다는 말이다. 효가 변화하는 근원은 剛柔相推에 있다. 󰡔주역󰡕386효는 굳센 효剛爻와 부드러운 효柔爻, 이 두가지 종류에 불과하다. ‘相推란 말은 󰡔주역󰡕에서 여러번 언급된다. 이것은 너는 나를 바꾸고, 나는 너를 바꾸며, 너는 나를 변화시키고, 나는 너를 변화시킨다는 말이다. 즉 변화는 바로 相推의 과정에서 생산된다. 계사전상의 제2장에서 말한 剛柔相推而生變化의 뜻이 또한 이와 같다.

繫辭焉而命之, 動在其中矣계사전은 반드시 말을 행동과 연결시켜야만 한다는 의미이다. 계사전상12장에서 말한 鼓天下之動者存乎辭와 여기서 말한 繫辭焉而命之, 動在其中矣에서 앞의 것은 행동으로부터 를 언급한 것이고 뒤의 것은 로부터 행동을 언급한 것이다. 그러나 의미는 비슷하다. 는 효사를 가리킨다. ‘命之󰡔주역󰡕을 지은 사람이 효사를 사용하여 한 효의 길흉회린을 명확하게 가리킨다는 말이다. 움직임은 과 같지 않다. 변은 굳셈과 부드러움이 서로 바뀌어 변화를 낳는다는 것을 가리키며 괘효의 변화이다. 또한 객관세계의 변화를 반영한다. 여기서의 자와 윗 글에서의 生乎動天下之動자는 그 의미가 같다. 모두 사람들이 취하는 행동이나 말을 가리킨다. “繫辭焉而命之, 動在其中矣󰡔주역󰡕을 지은 사람이 효에 말을 붙여서 한 효의 길흉회린을 명확하게 가리켜 주었으며, 󰡔주역󰡕을 쓰는 사람의 행동방향은 바로 그 가운데에 포함되어 있다는 말이다.

Posted by 샤르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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