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묘장구대다라니의 뜻을 학문적으로 해석하는 문헌에서 찾아 보았다. 스님들이 대중의 입장에서 이해하기 쉽게 풀이한 자료도 있지만, 원어의 발음과 뜻과 알파벳을 살펴보며 문자 자체가 가지는 뜻을 우선 학술적으로 음미해 보고자 한다면 유의미한 자료이다. 

 

 

천수다라니 어구 해설

 

<천수경 연구>, 정각지음 에서

 

Ⅰ. 귀의문(歸依文)

천수다라니는 다음과 같은 귀의의 문장으로 시작된다.

 

Namo ratna-trayāya

삼보(三寶)께 귀의(歸依)합니다

 여기서 Namo는 중성명사 namas의 변격동사로서 ‘귀의(歸依)‧귀명(歸命)’의 뜻을 갖는다. ratna는 ‘보물’을 말하며, traya는 ‘3종의’라는 형용사로 ratna를 수식하며, ya는 여격(與格)어미가 된다. 이를 종합하면, 3종의 보물 즉 “삼보께 귀의합니다”라는 뜻을 얻을 수 있다.

 

namaḥ āryāvalokiteśvarāya bodhisattvāya mahāsatt- -vāya mahākāruṇikāya

크나큰 자비의 성관자재(聖觀自在)보살마하살께 귀의합니다

 여기서 namaḥ는 중성명사 namas의 변격동사로서 ‘귀의‧귀명’의 뜻을 갖는다.  한편 āryāvalokiteśvarāya에서 ārya는 ‘성(聖)’을 의미하며, Avalokiteśvarāya는 ‘관(觀)하여 보는[見]’이란 뜻의 과거수동분사 Avalokita에 ‘신(神)’을 뜻하는 īśvara가 붙어 ‘관견(觀見)하는 신(神)’ Avalokiteśvara, 즉 불교적 의미로서의 ‘관자재(觀自在)’에 여격(與格)어미 ya가 붙은 것으로 ‘관자재께’라 해석할 수 있다. 한편 bodhisattvāya는 bodhisattva 즉 ‘보살’에 여격어미 ya가 붙어 ‘보살께’를, mahāsattvāya는 mahāsattva 즉 ‘마하살’에 여격 ya가 붙어 ‘마하살께’란 뜻을 갖는다. 그리고 mahākāruṇika는 maha 즉 ‘큰’에 ‘자비’의 뜻을 갖는 kāruṇika, 그리고 거기에 여격 ya가 붙어 ‘큰 자비에’란 뜻을 갖는다. 이상의 것을 종합하면, “크나큰 자비의 성관자재보살마하살께 귀의합니다”라는 뜻을 얻을 수 있다.

 

300) Oṁ301) sarva-bhayeṣu trāṇa-karāya302) tasmai 303) namas 

아! 모든 두려움 가운데 피난처 되어지는 그에게 귀의합니다

 이어 다음의 문장 Oṁ sarva-bhayeṣu trāṇa-karāya에서 Oṁ은 ‘아!’라는 감탄사로 해석할 수 있는 말이며, sarva는 ‘모든‧일체의’라는 뜻을 갖는 형용사이다. bhayeṣu는 ‘두려움’의 뜻을 갖는 명사 bhaya에 ‘중(中)의’라는 뜻을 갖는 처격(處格)어미 eṣu가 합해져 ‘두려움 가운데의’라는 의미를 갖는다. trāṇa는 ‘피난처’의 뜻을 갖는 명사이며, 거기에 ‘되어지다’는 뜻을 갖는 형용사 kara와 여격 ya가 붙어, 이를 앞의 것과 합해 번역하면 “아! 모든 두려움 가운데 피난처 되어지는 (이)에게”라는 뜻을 얻을 수 있다.

 이어 다음 어구로서 tasmai namas가 등장하는 바, 여기서 tasmai는 ‘그’를 뜻하는 tad의 단수 여격형으로 ‘그에게’의 의미를 갖는다. 그리고 namas는 ‘귀의합니다’는 뜻을 갖는다. 이를 앞의 문장과 연결시켜 보면, “아! 모든 두려움 가운데 피난처 되어지는 그에게 귀의합니다”라는 번역을 얻을 수 있다.

 

kṛtvā imam āryāvalokiteśvara-stavaṁ Nīlakaṇṭha- nāma304)

이것을 (즉), 청경(靑頸)의 명호인 성관자재 찬가(讚歌)를 기억하면서

 그럼에도 다음 구절은 이렇듯 귀의를 행함에 대한 선행적 전제가 제시되고 있다. kṛtvā imam āryāvalokiteśvara-stavaṁ Nīlakaṇṭha-nāma라는 구절이 그것이다.

 여기서 kṛtvā는 ‘기억하다’는 뜻의 kṛ에 절대분사 tvā가 붙어 ‘기억하면서’의 의미를 갖는다. 그리고 imam은 ‘이것’을 뜻하는 지시대명사 idam의 대격으로서 ‘이것을’이라 표기할 수 있는 즉, ‘이것을 기억하면서’ 모든 두려움 가운데 피난처 되어지는 그에게 귀의합니다라는 말이다. 그런데 여기서 ‘이것을’이란 āryāvaloki- -teśvara-stavaṁ Nīlakaṇṭha-nāma를 말하고 있다.

 여기 āryāvalokiteśvara-stavaṁ에서 stavaṁ은 ‘찬가’의 뜻을 갖는 명사에 대격(對格)어미 ṁ이 붙어진 것으로 ‘찬가를’이라 해석될 수 있는 바, 이 구절은 ‘성관자재 찬가를’이라는 뜻을 갖는다. 그리고 이를 수식하는 말로서 Nīlakaṇṭha-nāma가 붙는데, 닐라깐타(Nīlakaṇṭha)에서 Nīla는 ‘푸른[靑]’을 뜻하는 형용사이며, kaṇṭha는 ‘목[頸]’을 뜻하는 명사이다. 곧 ‘푸른 목’ ‘청경(靑頸)’을 뜻하는 Nīlakaṇṭha는 원래 힌두의 신 쉬바(Śiva: 또는 비슈누)의 명칭이었는데, 후대에 불교화되어 ‘청경관음’으로 불리워진 채 관세음보살의 화신 가운데 하나가 되어진 분이라 말할 수 있다. 그리고 nāma는 ‘이름‧명호’를 뜻하는 명사 nāman의 주격에 해당하는 것으로 이는 앞의 구절과 합해 Nīlakaṇṭha-nāma, 즉 ‘청경의 명호’라 해석할 수가 있다.

 그리하여 위의 구절을 우리는 “이것을 (즉), 청경의 명호인 성관자재 찬가를 기억하면서”라 번역할 수 있게 되는 바, 이렇듯 기억을 행하면서 모든 두려움 가운데 피난처 되어지는 그 크나큰 자비의 성관자재보살마하살께 귀의합니다라는 말로서 귀의문은 종결된다.305)

 

Ⅱ. 발원문(發願文)‧I(전제부前提部)

 이상 귀의문 구절을 놓고 생각할 때 이후 다라니의 내용은 성관자재 찬가, 즉 ‘청경의 명호’에 대한 기억이 대종(大宗)을 이루게 될 것임을 우리는 알 수 있게 된다. 그럼에도 이에 앞서 다라니는 다음과 같은 ‘독송자의 발원’, 즉 발원문 부분을 첨가시키고 있다.

 

hṛdayaṁ306) vartayiṣyāmi sarvārtha-sādhanaṁ307) śubhaṁ ajeyaṁ sarva-bhūtānāṁ bhava-mārga-viśodh- akam

저는 마음을 닦겠읍니다. 일체의 이익 성취와‧복과‧필승과, 일체 중생들의 삶의 길의 청정(이란 마음)을‧‧‧‧‧‧

 여기서 hṛdayaṁ은 ‘마음’을 뜻하는 단어 hṛdaya의 대격으로 ‘마음을’이라 해석할 수 있다. 한편 vartayiṣyāmi는 ‘일으키다’, ‘수행하다’는 뜻의 동사 vṛt의 사역 미래형 1인칭으로, “저는 마음을 닦겠습니다”라고  해석할 수 있다. 그리고 그 ‘마음’을 구체적으로 설명하는 단어들이 뒤에 붙어 있는데, sarvārtha-sādhanaṁ śubhaṁ ajeyaṁ sarva-bhūtānāṁ bhava-mārga-viśodhakam 등이 이에 해당된다.

 여기서 sarvārtha는 ‘일체의’란 뜻의 형용사 sarva와 ‘이익’을 뜻하는 명사 artha가 합해진 말이며, sādhanaṁ은 ‘성취’를 뜻하는 sādhana에 대격어미 ṁ이 첨가되어 ‘성취를’이라 번역할 수 있다. 또한 śubhaṁ이란 ‘안녕(安寧)’이나 ‘복(福)’을 뜻하는 śubha에 대격어미 ṁ이 첨가되어 ‘복을’이라 이를 번역할 수 있다. 한편 ajeyaṁ은 ‘필승(必勝)’이란 뜻의 ajeya에 대격어미 ṁ이 첨가되어 ‘필승을’이라 해석된다.

 그리고 sarva-bhūtānāṁ은 sarva 즉 ‘일체의 bhūtānāṁ’으로, 여기서 bhūtānāṁ은 ‘유정‧중생’을 뜻하는 명사 bhūta에 복수 소유격 어미 nāṁ이 붙어 이를 ‘일체 중생들의’라 번역할 수 있다. 그리고 bhava-mārga-viśodhakam에서 bhava는 ‘삶’이나 ‘존재’를 뜻하는 명사이다. mārga는 ‘길’을 뜻하는 명사이며, viśodhakam은 ‘청정(淸淨)’을 뜻하는 viśodhaka에 대격어미 m이 붙어 ‘청정을’이라 번역할 수 있다.

 이에 우리는 위 전체 문장을 다음과 같이 해석할 수 있다. “저는 마음을 닦겠습니다. 일체의 이익 성취와‧복과‧필승과, 일체 중생들의 ‘삶의 길의 청정(이는 <열반>이란 뜻을 갖는다)’이란 (마음)을‧‧‧‧‧.” 이를 풀어보면, “저는 ‘복과 필승 등 일체의 이익 성취와 일체 중생들의 삶의 길에 있어서의 청정(열반)’을 바라는 (저의) 마음을 닦아나가겠습니다”라 말할 수 있기도 할 것인 바, 이는 다라니 독송자가 가져야 할 발원의 총체적 귀결점을 제시하고 있는 동시에 발원을 행함에 앞선 다라니 독송자의 기본적 자세를 말하고 있는 것으로 이해할 수 있다.

 

Ⅲ. 발원문‧II(서술부敍述部)

 이어 위 발원문에 대한 구체적인 원(願)이 제시되고 있는 바, 앞의 발원문을 총원(總願)이라 할 수 있다면 이 부분은 앞의 총원에 대한 각각의 개별적인 원, 즉 별원(別願)이라 말할 수 있을 것이다. 이 별원 부분이 앞의 원에 대한 구체적 설명을 행하고 있다는 것은 다음에 이어지는 어구 tadyathā를 통해 알 수 있다.

 

tadyathā

앞의 예(例)는 다음과 같다(다시 말하건대)

 이어 tadyathā라는 말이 나오고 있는데 여기서 tadyathā는 ‘이것은 그것과 같다’, ‘앞의 예는 다음과 같다’는 의미이다. 즉 앞의 내용에 대한 좀더 구체적인 서술을 행하게 됨을 명시한다고 할 수 있다. 문법적으로 tadyathā는 ‘이것’을 의미하는 tad와 ‘‧‧‧이다’는 뜻의 yathā가 합해진 말로 ‘이것은 ‧‧‧이다’라는 서술구의 의미를 갖는다. 이를 굳이 표현한다면 “다시 말하건대” 쯤으로 해석함이 타당할 것이다.

 이어 다음과 같은 총체적 서술부의 구절들이 등장하게 된다.

 

oṁ āloka e, ālokamati308) lokātikrānta ehy-ehi309) Hare

아! 관(觀)하여 보는 자시여! 출세간(出世間)의 마음, 세속을 초월한 자시여! 오소서, 오소서 관자재시여!

 그럼에도 여기 서술부는 발원의 대상, 즉 성관자재께 대한 다음과 같은 귀의의 내용을 또다시 등장시키고 있다. oṁ āloka e, ālokamati lokātikrānta ehy-ehi Hare.

 여기서 “‘āloka e’는 ‘Avalok[ita]’ 표기에 대한 중앙아시아의 형식으로서,”310) ‘관하여 보는’을 뜻하는 ‘Avalokita’의 호격에 해당되는 단어로 이해할 수 있다. 이에 우리는 oṁ āloka e를 “아! 관하여 보는 자시여!“라고 번역할 수 있을 것이다.

 한편 ālokamati에서 āloka는 ‘출세간(出世間)’을, mati는 ‘마음’을 뜻한다. 또한 lokātikrānta에서 loka는 ‘세속(世俗)’을, atikrānta는 과거수동분사 ‘초월한’의 명사형 호격으로 이해된다. 이에 이 부분을 번역해 보면 ‘출세간의 마음, 세속을 초월한 자시여!“라는 의미를 얻을 수 있다.

 뒤의 ehy-ehi Hare에서 ehy-ehi는 ehi가 반복되어 쓰인 것이다. 그럼에도 산스크리트어의 연성법(連聲法)에서 i와 모음이 만날 경우 i가 y로 바뀌는 까닭에 앞의 것이 ehy로 표기된 것이다. 여하튼 여기서 ehi는 ‘오다’는 뜻의 명령형으로 ‘오소서, 오소서’라고 번역할 수 있다. 그리고 뒤의 Hare는 ‘비슈누(Viṣṇu) 신’을 지칭하는 명사 hari의 호격으로, 여기서는 문장 내용상 앞서 말한 청경이나 앞 구절의 āloka e로서의 ‘관하여 보는 자’라 이해할 수 있을 것인 바, 관자재를 지칭한다고 해도 무리가 없을 것이다.

 이에 앞의 전체 문장을 “아! 관하여 보는 자시여! 출세간의 마음, 세속을 초월한 자시여! 오소서, 오소서 관자재시여!”라 번역할 수 있다.

 

311) mahābodhisattva 312) 313) smara-smara314) hṛd-

-ayam 

(저의) 마음을 기억하소서 기억하소서, 대보살(大菩薩)이시여!

 여기서 mahābodhisattva는 ‘대보살’의 호격에 해당한다. 그리고 smara-smara에서 smara는 ‘‧‧‧‧을 기억하다, 상기하다’는 동사 smaratī의 명령형이며, hṛdayaṁ은 hṛdaya 즉 ‘마음’에 대격어미 ṁ이 붙어 ‘마음을’이 된다. 한편 불공(1113B) 역본에 의할 것 같으면 이 뒤에 마마(摩摩:mana)라는 표현이 추가되어 있기도 하는 바,315) 여기서 mana는 인칭대명사 mad의 속격(屬格)으로서 ‘나의’라 해석될 수 있다. 이에 ‘나의’라는 표현까지를 삽입하여 이를 번역하면 “(저의) 마음을 기억하소서 기억하소서, 대보살이시여!”라 할 수 있을 것이다.

 

316) kuru-kuru karma sādhaya-sādhaya317)

의식(儀式)을 행하소서, 행하소서. (그리하여 저희의) 목표가 달성케 되기를‧‧‧‧

 kuru-kuru에서 kuru는 ‘행하다’는 뜻을 가진 Kṛ의 2인칭 단수 명령형으로 ‘행하소서’라 번역할 수 있다. 또한 karma는 ‘의식’을 뜻하는 명사 karman의 대격(對格)으로, ‘의식을’이라 번역할 수 있다. 그러므로 우리는 “의식을 행하소서, 행하소서”라는 뜻을 얻을 수 있다. 한편 sādhaya는 ‘목적을 달성하다’는 뜻의 단어 Sādh에 사역활용 어미인 aya가 붙은 채 사역분사로 쓰여지고 있는 바, ‘목표가 달성케 되기를‧‧‧‧‧’이라 해석할 수 있다. 이에 위의 내용과 함께 이를 번역해 보면, “의식을 행하소서, 행하소서! (그리하여 저희의) 목표가 달성케 되기를‧‧‧”이라는 뜻이 된다.

 이로서 [발원문]은 끝나게 된다.

 

Ⅳ. 성관자재 찬가(聖觀自在讚歌:청경의 명호)

 위 [발원문]에 이어 [성관자재 찬가]가 등장하게 되는데, 이는 앞의 [귀의문] 가운데 “성관자재 찬가인 청경의 명호를 기억하면서 모든 두려움 가운데 피난처 되어지는 크나큰 자비의 성관자재보살마하살께 귀의한다”는 내용과의 연관선상에서 이해해야 할 것이다.

 이어 다라니는 다음과 같이 16항목에 달하는 [성관자재 찬가]를 등장시키고 있다. 이는 ‘청경의 명호’에 대한 나열이라고 말할 수 있는 바, 이후 16개에 이르는 ‘청경의 명호’가 동시에 소개되기도 한다.

 

318) dhuru-dhuru vijayanta e mahāvijayanta e

수호(守護)하소서, 수호하소서! <승리자>시여! <대 승리자>시여!

 dhuru-dhuru에서 dhuru는 ‘지니다‧수호하다’는 뜻을 갖는 동사 Dhṛ의 명령형으로 ‘수호하소서, 수호하소서!’라 번역할 수 있다.

 한편 vijayanta e에서 “vijayanta는 인드라(Indra)신의 별칭이 되기도 하는데, ‘승리자’라는 의미를 갖고 있기도 하다.”319) 이에 다라니에서는 [성관자재 찬가]의 한 부분으로서 이 내용을 말하는 가운데 ‘승리자’라는 명칭 자체를 ‘청경’의 명호 가운데 하나로서 우리에게 소개하고 있는 것이다.

 이에 위 문장을 해석해 본다면, “수호하소서, 수호하소서! <승리자>시여! <대 승리자>시여!”라 할 수 있다.

   

dhara-dhara dharaṇiṁdhareśvara

지지(支持)하소서, 지지하소서, <능히 대지를 지지하는 신>이시여!

 dhara-dhara에서 dhara는 ‘지지‧보존‧보지(保持)하는’의 뜻을 갖는 동사 dharatī의 명령형이다. 또한  인도의 신 비슈누나 쉬바의 명칭을 뜻하기도 하는데, 여기서는 ‘지지(支持)하소서’의 뜻으로 이해함이 좋을 것 같다. 또한 dharaṇiṁdhareśvara320)는 dharaṇiṁdhara와 īśvara로 나뉘는 바, dharaṇiṁdhara는 ‘능히 대지를 지지하는’이란 형용사이며, īśvara는 ‘신’을 뜻하는 말의 호격으로 이해할 수 있으니, 이 역시 ‘청경의 명호’ 가운데 하나로서 <능히 대지를 지지하는 신>으로 이해해야 할 것이다.

 이에 위 문장을 “지지하소서, 지지하소서, <능히 대지를 지지하는 신>이시여!”라 해석할 수 있다.

 

cala-cala malla321) vimalāmala322)-mūrtte

(이리 저리) 움직이소서, 움직이소서 <말라(神)>시여! 부정(不淨)을 여읜 청정한 <무르떼(神)>시여!

 cala-cala의 cala는 ‘움직이는‧요동하는’의 뜻을 갖는 동사 calatī의 명령형이다. 그리고 이어 malla vimalāmala가 등장하는데, 이 구절을 해석하는데 있어 주의를 기울일 필요가 있다.

 한글 음역 다라니에서는 이 부분을 ‘마라 미마라 아마라’라 표기하여 그 음에 따라 이를 mala vimala amala의 도식적 관계로서 이해하게끔 하고 있는 바,323) 이 표기에 따른다면 우리는 이 부분을 굳이 “부정이여! 부정을 여읜 청정한”이라 번역할 수 있을 것이다. 여기서 mala는 ‘부정’을 뜻하는 명사의 호격이며, vimala는 ‘부정을 여읜’이란 형용사, 그리고 amala는 ‘청정한’의 형용사를 뜻하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앞의 공관도표를 통해 볼 때 불공(1064, 1113B) 및 가범달마(1060) 역본 등은 이 가운데 한글 음역의 ‘마라’에 해당하는 부분을 ‘마마(摩摩)’로서 한역 표기를 행하고 있는 즉, 이에 따른다면 우리는 ‘mama vimal-āmala’로서 이 구절을 이해할 수 있다.324)

 여기서 mama는 ‘나’를 뜻하는 인칭대명사 mad의 속격으로, ‘나의’라 해석될 수 있다. 그리고 앞서 살펴보았듯이 vimala는 ‘부정을 여읜’, amala는 ‘청정한’이란 뜻을 갖는 즉, “나의 부정을 여읜 청정한”이란 해석을 얻을 수 있다.

 그러나 L. Chandra는 한글 음역 다라니를 표기하는데 있어 ‘malla vimala-amala’를 채택325)하고 있는 바, 여기서 malla는 나라야나(Nārāyaṇa)를 말하며 인도 고대 서사시 [마하바라타(Mahābhārata)] 가운데 비슈누신에 대한 명칭으로서 쓰여지고 있다. 그럼에도 다라니의 구성상 [성관자재 찬가]에 해당하는 이 부분에서는 위의 신적(神的) 인물을 ‘청경의 명호’의 하나로서 이해하고 있는 즉, 앞의 cala-cala를 첨가한 채 우리는 위 구절을 “(이리 저리) 움직이소서, 움직이소서, <말라(神)>시여! 부정을 여읜 청정한”이라 번역할 수 있다.

 그리고 뒤의 mūrtte re는 신의 명칭으로 이해할 수 있는 바, amala 즉 비슈누의 처(妻) 락쉬미(Lakṣmī)를 지칭하는 것으로 이해된다. 한편 금강지(no.1061) 역본에서는 mūrtte re 대신 ‘aryāvalokiteśvara Jina’ 즉 ‘성관자재 성자’라는 표현을 쓰고 있기도 하는 바, 여기서 mūrtte re 역시 ‘청경의 명호’의 하나로서 이해함이 좋을 듯 하다.

 이에 이상의 관점에서 위 문장을 해석해 본다면, “(이리 저리) 움직이소서, 움직이소서 <말라(神)>시여! 부정을 여읜 청정한 <무르떼(神)>시여!”라는 해석을 얻을 수 있게 된다.326) 여기서 <말라>나 <무르떼>는 ‘청경의 명호’ 가운데 하나로 이해될 수 있다.

327) ehy-ehi328) Lokeśvara 329) rāga-viṣaṁ vināśaya 330) dveṣa-viṣaṁ vināśaya331) moha-jāla-viṣaṁ vināśaya332)

오소서, 오소서, <세자재(世自在)>시여! 탐욕(貪慾)의 독을 파괴하시고, 진에(瞋恚)의 독을 파괴하시고, 치암(癡暗:어리석음)의 얽혀짐의 독을 파괴하소서!

 ehy-ehi에서 ehi는 ‘오다’는 말의 명령형이며, Lokeśvara는 통상적으로 ‘세자재’를 뜻하는 바, 이 역시 ‘청경의 명호’ 가운데 하나로서 이해 되어질 수 있다. 이에 이 문장은 “오소서, 오소서, <세자재>시여!”라 해석할 수 있을 것이다.

 한편 rāga-viṣaṁ vināśaya에서 rāga는 ‘탐욕’을 뜻하는 명사이며, viṣaṁ은 ‘독’을 뜻하는 명사 viṣa에 ‘을’을 뜻하는 대격어미 ṁ이 첨가된 것으로 ‘탐욕의 독을’이라 해석할 수 있다. 한편 vināśaya는 ‘파괴하다’는 뜻을 갖는 동사 vināśayatī의 명령형으로 ‘파괴하소서’라 해석되는 바, 앞의 내용을 종합하면 “탐욕의 독을 파괴하소서!”라 이를 옮길 수 있게 된다.

 dveṣa-viṣaṁ vināśaya에서 dveṣa는 ‘진에(瞋恚)’를 뜻하는 명사이다. 여기에 ‘독을’이란 viṣaṁ이 붙고 ‘파괴하소서’란 뜻의 vināśaya가 붙어 이를 “진에의 독을 파괴하소서!”라 번역할 수 있게 된다.

 moha-jāla-viṣaṁ vināśaya에서 moha는 ‘치암(癡暗:어리석음)’을 뜻하는 명사이며, jāla는 ‘그물 망(網)’을 뜻하는 명사이다. 즉 ‘치암(어리석음)이 얽혀져 있음’을 말하는 것이다. 여기에 viṣaṁ과 vināśaya가 연결되어, 이는 “치암의 얽혀짐의 독을 파괴하소서!”라 번역될 수 있다.

 이에 앞의 전체 문장을 우리말로 옮겨 보면, “오소서, 오소서, <세자재>시여! 탐욕의 독을 파괴하시고, 진에의 독을 파괴하시고, 치암(어리석음)의 얽혀짐의 독을 파괴하소서!”라는 기원(祈願)의 뜻으로 이를 이해할 수 있게 된다.

 

huluhulu malla hulu Hare 333) Padmanābha

기쁘도다! <말라(神)>시여! 기쁘도다! <관자재>시여, <파드마나바>시여!

 huluhulu mala에서 huluhulu는 기쁨의 탄성, ‘기쁘도다!’라는 의미의 불변화사(不變化詞)가 된다(‘기뻐하다’는 동사 hulutī의 명령형으로 이해할 수 있기도 하다). 그리고 malla는 앞서 살펴본 바 비슈누의 화신 나라야나를 의미하는 즉, ‘청경의 명호’ 가운데 하나로서 <말라(神)>를 이해하여야 할 것이다.

 한편 hulu Hare Padmanābha에서 Hare는 비슈누신을 뜻하는 명사 hari의 호격으로, 관자재(觀自在)를 뜻하고 있음은 앞서 말한 바 있다. 그리고 Padmanābha는 ‘연꽃’을 의미하는 Padma와 ‘허공’을 뜻하는 nābha가 결합된 말로, 비슈누신의 명칭으로 이해되기도 하는 한편 관세음보살의 화신적 성격을 띄기도 하는 바, 이 역시 ‘청경의 명호’ 가운데 하나로서 이해될 수 있다.

 이상 문장을 옮겨 보면, “기쁘도다! <말라(神)>시여! 기쁘도다! <관자재>시여, <파드마나바>시여!”가 된다. 이는 앞의 구절에서 설명된 바, ‘탐욕‧진에‧치암’ 등 삼독이 파괴될 것에 대해 ‘성관자재’께 기쁨의 탄성을 올리는 내용으로 이해될 수 있을 것이다.

 

sarasara sirisiri suru-suru 334) buddhyā-buddhyā bodhaya-bodhaya

이리 저리 좌우로 움직이소서, 흐르소서! 비추어 식별(識別)함으로서 깨닫게(이룩하게) 하소서!

 sara-sara siri-siri suru-suru에서 sarasara는 ‘이리 저리 움직이는’의 뜻을, sirisiri는 ‘좌우로 움직이는’이란 뜻을 갖는데, 모두 명령형으로 쓰이고 있다. 한편 suru-suru에서 suru는 ‘흐르다‧흐르게 하다’는 동사 sru의 명령형으로서,335) ‘흐르소서!’라 번역할 수 있다. 이에 앞의 어구 전체를 “이리 저리 좌우로 움직이소서, 흐르소서!”라 해석할 수 있다.336)

 그 다음 구절인 buddhyā-buddhyā에서 buddhyā는 ‘신념(信念)’ 또는 ‘식별(識別)’ 등의 뜻을 갖는 명사 buddhi의 구격(具格)으로서 ‘(반조하는) 신념으로서, 식별로서’라 해석할 수 있다.337) 그리고 bodhaya-bodhaya는 ‘깨닫다’ 또는 ‘이룩하다’는 뜻의 동사 bodhayatī의 명령형으로(또는 bodh에 사역형 어미 aya가 붙어) ‘깨달으소서(이룩하소서)’ 또는 ‘깨닫게 하소서(이룩하게 하소서)’라는 의미를 갖는다.

 이상의 해석을 통해 볼 때, 이 문장에는 주어가 발견되지 않는다. 그렇다면 위 행위의 주체자는 누구인가? 이에 금강지(1061) 역본에서는 suru-suru 다음에 muru-muru라는 표현이 삽입되어 있기도 하는데, 이는 아수라의 명칭으로 통칭 ‘신’이라 간략할 수 있는 말이다. 곧 “신이시여!”라 말할 수 있는 바, 전체 다라니의 내용과 굳이 연관을 시킨다면 이 역시 ‘청경의 명호’ 가운데 하나로서 이해함이 좋을 듯 하다.

 이에 번역상의 편리를 위해 금강지 역본의 내용을 삽입시킨 채 위 전체 문장을 의역해 보면, “이리 저리 좌우로 움직이소서, 흐르소서! (<무루무루<神>>시여!) 비추어 식별함으로서 깨닫게(이룩하게) 하소서!”라는 뜻을 얻을 수 있다.

 

maitriya Nīlakaṇṭha 338) kāmasya339) darśanena prahlādāya340) manaḥ svāhā

정(情)이 깊은 <청경(靑頸)>이시여! 즐거움의 마음을 성찰함으로서, 쁘라흐라다(神)께 영광이 있기를!

 maitriya Nīlakaṇṭha에서 maitriya는 ‘정이 있는’의 뜻을 갖는 명칭동사이며, Nīlakaṇṭha는 <청경>을 뜻한다. 이에 ‘정이 깊은 <청경>이시여!’라고 번역할 수 있다.

 kāmasya darśanena prahlādāya manaḥ svāhā에서 kāmasya는 ‘즐거움’을 뜻하는 남성명사 kāma341)에 속격어미 sya가 붙어진 말로, ‘즐거움의(혹은 kāmā의)’라 번역할 수 있다. 그리고 darśanena는 ‘바람(원함, 희구), 관찰, 봄’이란 뜻의 darśana에 구격어미 na가 붙어(어간 끝의 a가 e로 변하고 na 붙음) ‘성찰함으로서’라 해석할 수 있다.

 그리고 뒤의 prahlādāya342)는 비슈누 숭배자로서의 쁘라흐라다(prahlāda)343)에 여격 ya가 붙은 것으로 ‘쁘라흐라다(神)께’라 번역할 수 있다. 여기에 ‘마음’을 뜻하는 manas의 대격 manaḥ ‘마음을’, 또한 svāhā가 붙어, 우리는 위 문장 전체를 “정이 깊은 <청경>이시여! 즐거움의 마음을 성찰함으로서, 쁘라흐라다(神)께 영광이 있기를!”이라 해석할 수 있다.

 

siddhāya svāhā mahāsiddhāya svāhā siddhayogeśvar-

-āya svāhā

성자께 영광이 있기를! 대성자께 영광이 있기를! 성자, <요가의 주(主)>께 영광이 있기를!

 siddhāya svāhā에서 siddhāya는 ‘성자’를 뜻하는 명사 siddha에 여격어미 ya가 붙어 ‘성자께’라 할 수 있으며, svāhā는 ‘영광이 있기를!’이란 축복어가 되니, “성자께 영광이 있기를!”이라 이를 번역할 수 있다.

 mahāsiddhāya svāhā는 “대성자께 영광이 있기를!”이라 번역할 수 있다.

 siddhayogeśvarāya svāhā에서 siddhayogeśvarāya는 siddha와 yoga와 ‘신’을 뜻하는 īśvara가 합해진 꼴에 여격어미 ya가 붙어 ‘성자, <요가의 주>께’라 할 수 있으며, 뒤에 svāhā가 붙어 “성자, <요가의 주>께 영광이 있기를!”이라 번역할 수 있다. 한편 yogeśvara <요가의 주>는 쉬바의 호칭이 되어지기도 하는 바, ‘청경의 명호’ 가운데 하나로서 쓰이고 있음을 생각할 수 있다.

 이에 위 전체 문장을 번역해 본다면, “성자께 영광이 있기를! 대성자께 영광이 있기를! 성자, <요가의 주>께 영광이 있기를!”이란 뜻을 얻을 수 있다.

 

Nīlakaṇṭhāya svāhā

<청경(靑頸)>께 영광이 있기를!

 Nīlakaṇṭhāya svāhā는 Nīlakaṇṭha, 즉 ‘청경’에 여격 ya가 붙어 “<청경>께 영광이 있기를!”이라 이를 번역할 수 있다.

 

varāhamukha-siṁhamukhāya344) svāhā

<멧돼지의 용모, 사자의 용모를 (갖춘) 자>께 영광이 있기를!

 varāhamukha-siṁhamukhāya에서 varāha는 ‘멧돼지’를 말하는데, ‘비슈누(Viṣṇu)의 화신’으로 이해할 수 있다. 또한 mukha란 ‘얼굴’ 내지 ‘용모’를 뜻하는 명사로서, varāhamukha라 함은 ‘멧돼지의 용모로 변한 Viṣṇu의 화신’을 뜻한다고 하겠다. 한편 siṁhamukhāya에서 siṁha란 ‘사자(獅子)’를 말하는 바, 여타 역본에서 표기되고 있는 narasiṁha는 ‘Viṣṇu의 화신’으로서의 ‘인사자(人獅子)’를 말하고 있다. 그리고 다음에 ‘용모’라는 뜻의 mukha가 붙어진 바, 이를 ‘사자의 용모로 변한 Viṣṇu의 화신’으로 이해할 수 있으며, 거기에 여격어미 ya가 붙어 “<멧돼지의 용모, 사자의 용모를 (갖춘) 자>께 영광이 있기를(svāhā)!”이라 전체 내용을 번역할 수 있다.

 여기서 <멧돼지의 용모, 사자의 용모를 (갖춘) 자> 또한 ‘청경의 명호’ 가운데 하나로서 이해할 수 있다.

 

345) padma-hastāya svāhā

<연꽃을 손에 쥔 자>께 영광이 있기를!

 padma-hastāya svāhā에서 padma는 ‘연꽃’이란 뜻의 명사이다. 그리고 hasta는 ‘손’, ‘손에 쥔’을 뜻하는 명사로서 둘을 합하면 ‘연꽃을 손에 쥔 자’가 된다. 거기에 여격어미 ya가 붙어 ‘연꽃을 손에 쥔 자께’라는 뜻이 되는데, 여기서 ‘연꽃’이란 비슈누의 지물(持物)이 되어지는 까닭에 ‘연꽃을 손에 쥔 자’라 함은 곧 비슈누를 말한다고 할 것이다. 이에 이 구절을 “<연꽃을 손에 쥔 자>께 영광이 있기를(svāhā)!”이라 번역할 수 있다. 한편 ‘연꽃을 손에 쥔 자’는 불교 관음보살의 화신인 연화수(蓮華手)보살로 이해되기도 한 채, 여기서는 ‘청경의 명호’ 가운데 하나로 쓰이고 있다.

 

cakrāyudhāya svāhā 346)

<챠크라(원반 모양의 무기)를 손에 쥔 자>께 영광이 있기를!

 cakrāyudhāya svāhā에서 cakrāyudha는 비슈누(Viṣṇu)나 끄리슈나(Kṛṣṇa)의 명칭이 된다. 거기에 여격어미 ya가 붙어 “신(Viṣṇu 혹은 Kṛṣṇa)께 영광이 있기를!”이라 이 부분을 번역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불공 역본(1113B)이거나 불공(1064) 및 가범달마(1060) 역본에서는 이 부분을 cakra hastāya svāhā라 표기하고 있는 바, 여기서 cakra는 ‘원반 모양의 무기로서 Viṣṇu의 지물(持物)’로 알려져 있다. 그리고 hasta는 ‘손에 쥔’을 뜻하며 여기에 여격어미 ya가 붙어 “<챠크라>를 손에 쥔 (자)>에게 영광이 있기를(svāhā)!”이라 번역할 수 있다. 여기서 <챠크라를 손에 쥔 자> 역시 ‘청경의 명호’ 가운데 하나로 이해되고 있다.

 

śaṅkha-śabda-nibodhanāya svāhā347)

<소라고둥 소리를 듣는 자>께 영광이 있기를!

 śaṅkha-śabda-nibodhanāya svāhā에서 śaṅkha란 ‘소라고둥[螺貝]’이란 명사로서, Viṣṇu의 지물(持物)로 쓰이기도 하고 Viṣṇu의 상징 자체가 되어지기도 하는 단어이다. 그리고 śabda는 ‘음(音)’을 뜻하는 명사로서, 이 둘을 합하면 ‘소라고둥 소리’가 된다. 한편 nibodhanāya는 ‘소리를 듣다’는 뜻을 갖는 nibudh의 현재분사 nibodhana에 여격어미 ya가 붙어 ‘소리를 듣는 자에게’라 번역될 수 있다. 이에 전체 문장을 “<소라고둥 소리를 듣는 자>께 영광이 있기를!”이라 번역할 수 있는 바,348) <소라고둥 소리를 듣는 자>는 Viṣṇu를 말할 것이나 여기서는 ‘청경의 명호’ 가운데 하나로서 쓰여지고 있음을 알게 된다.

 

349) mahālakuṭadharāya svāhā350)

<큰 방망이(를) 보지(保持)하는 (자)>께 영광이 있기를!

 mahālakuṭadharāya svāhā에서 maha는 ‘큰’이란 뜻이며, lakuṭa는 ‘방망이’라는 뜻의 명사로, 방망이(lakuṭa) 역시 비슈누의 지물 가운데 하나가 된다. 그리고 dhara는 ‘보지하는’이란 뜻의 형용사이며, 여기에 여격 ya가 붙어 있으니, 이 문장은 “큰 방망이(를) 보지하는 (자)께 영광이 있기를(svāhā)!”이라 해석될 수 있을 것이다. <큰 방망이(를) 보지하는 (자)> 역시 비슈누를 지칭하는 표현이나, 여기서는 ‘청경의 명호’ 가운데 하나로서 쓰여지고 있다.

 

vāma-skanda-deśa-sthita-kṛṣṇājināya svāhā351)

왼쪽 공격자 쪽에 있는 <흑색 성자>께 영광이 있기를!

 vāma-skanda-deśa-sthita-kṛṣṇājināya svāhā에서 vāma는 ‘왼쪽의’라는 뜻을 갖는 형용사이다. 그리고 skanda는 ‘공격자’거나 ‘Śiva신 또는 Agni신의 아들’을 의미하는 명사이다. 또한 deśa는 ‘쪽’ 또는 ‘장소’를 뜻하는 명사이며, sthita는 ‘서 있는’, ‘있는’의 뜻을 가지는 과거 수동분사, 그리고 kṛṣṇājina는 ‘흑색 야크(羚羊)의 가죽’ 내지 ‘비슈누 화신으로서 끄리슈나(kṛṣṇa)’의 별칭 ‘흑색 성자’를 말한다. 그리고 거기에 여격어미 ya가 붙어 있는 바, 이를 해석해 보면, “왼쪽 공격자 쪽에 있는 <흑색 성자>께 영광이 있기를(svāhā)!”이 된다.

 여기서 <흑색 성자> 역시 ‘청경의 명호’ 가운데 하나로서 쓰여지고 있다.

 

vyāghra-carma-nivasanāya svāhā352)

<호랑이 가죽(을) 착용(한 자)>께 영광이 있기를!

 vyāghra-carma-nivasanāya svāhā에서 vyāghra는 ‘호랑이’를 뜻하고, carma(n)는 ‘가죽’을 뜻하는 명사이다. 그리고 nivasana는 ‘(의복의) 착용’을 뜻하는 명사이며, 그 뒤에 여격어미 ya가 붙어지는 즉, 우리는 위의 문장을 “<호랑이 가죽(을) 착용(한 자)>께 영광이 있기를(svāhā)!”이라 번역할 수 있다.

 여기서 <호랑이 가죽(을) 착용(한 자)> 역시 ‘청경의 명호’ 가운데 하나로 쓰여지고 있다.

 

Ⅴ. 귀의문(歸依文)

이상 16항목에 걸친 [성관자재 찬가]를 통해 무려 16개에 이르는 ‘청경의 명호’가 동시에 소개되고 있는 바, 위 내용을 통해 볼 때 힌두 신앙의 많은 요소들이 불교 다라니와 접목되어 있음을 발견할 수 있다. 이에 다라니에 담긴 내재적 의미성을 파악하기 위해서 우리는 「‘천수다라니’에 대한 인도 신화학적(神話學的) 고찰」의 필요성을 느끼게도 되는 바, 현재 필자에 의해 진행되고 있는 이 연구의 성과는 이후 또다른 논문을 통해 소개할 예정이다.

 여하튼 이상의 [성관자재 찬가]에 이어, 다라니는 또다시 다음과 같은 [귀의문]을 등장시켜 전체 내용을 마무리짓고 있다.

  

namo ratna-trayāya353) namaḥ āryāvalokiteśvarāya svāhā354)

삼보에 귀의합니다. 성관자재께 귀의합니다. 영광이 있으소서!

 namo ratna-trayāya는 앞서 살펴본 것처럼, “삼보에 귀의합니다”는 뜻을 갖으며, namaḥ āryāvalokiteśvarāya는 “성관자재께 귀의합니다”라 번역될 수 있다. 그리고 svāhā는 “영광이 있기를······”이라 번역될 수 있음은 앞서 말한 바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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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00) 금강지 역본(no.1061)에는 뒤에 다음과 같은 어구가 삽입되어 있다.

      sarva-bandha-cchedana-karāya sarva-bhava-samudra-śoṣaṇa-karāa 

      sarva-vyādhi-praśamana-karāya sarv-ety-upadrava-vināśana-karāya

301) 금강지 역본(大正藏 no.1061)에는 Oṁ이란 표기가 생략되어 있다.

302) 불공(1064) 역본 및 가범달마(1060), 불공(1113B) 역본 등에서는 trāṇa-karāya 대신 tana라는 표기가 쓰이고 있다.

303) 불공(1064) 역본 및 가범달마(1060), 불공(1113B) 역본 둥에서는 tasmai 대신 tasya라는 표기가 쓰이고 있다.

304) stavaṁ Nīlakaṇṭha-nāma 부분은 각 역본마다 다른 표기를 행하고 있는 바, 이에 대해서는 본문 가운데 설명될 것이다.

305) 금강지 역본(大正藏, no.1061)에서는 이 부분을 bhāṣitaṃ으로 표기하고 있는 바, L. Chandra의 說에 의할 것 같으면 “한글 음역 다라니의 편집자가 bhāṣitaṃ라는 어구를 ‘āryāvalokiteśvara tava Nīlakaṇṭha-nāma(聖觀自在 그의 닐라깐타 名號)’라는 일련의 맥락으로서 이해했음에 기인한 것이라” 말하고 있으며, 불공(1064) 및 가범달마(1060) 역본에서는 이 부분을 ‘āryāvalokiteśvara tava nāmo Nīlakaṇṭha(聖觀自在 그의 名號인 닐라깐타)’로서 이해하고 있음을 덧붙이고 있기도 하다.

       Lokesh Chandra, The Thousand-Armed Avalokiteśvara, Abhinav Pub, 1988. p.94 (이하 L. Chandra로 표기)

       위의 tava는 2인칭의 인칭대명사 tvad의 속격 변화형으로 ‘그의’라 해석된다.

306) 이에 대해 불공(1064) 역본 및 가범달마(1060), 불공(1113B) 역본 등에서는 herima라는 표기를 행하고 있는 바, “悉曇 표기에서 herima는 ḥr[daya]ṁ과 같은 꼴로서 이해할 수 있다.”(L. Chandra. p.95)

307) 불공(1064) 역본 및 가범달마(1060), 불공(1113B) 역본 등에서는 sādhanaṁ 부분이 생략되어 있다.

308) 불공(1064) 역본 및 가범달마(1060), 불공(1113B) 역본 등에서는 ālokamati라는 표현이 생략되어 있다.

309) 기타 역본과는 달리 현행 다라니에서만 ehi라는 어구가 중복사용되고 있다.

310) L. Chandra. p.96.

       한편 호격으로서의 e의 사용은 Gītagovinda 가운데 종종 그 예가 보여지고 있는 바, 불공(1064) 및 가범달마(1060) 역본에서는 āvaloka e거나 āpaloka e라는 어구를 사용하고 있다.

311) 금강지(1061) 역본에는 이 앞에 āryāvalokiteśvara가 삽입되어 있다.

312) 불공(1064) 역본 및 가범달마(1060), 불공(1113B) 역본 등에는 이 뒤에 sarpa-sarpa라는 어구가 삽입되어 있다.

313) 금강지(no.1061) 역본에는 이 앞에 he bodhisattva he mahābodhi- -sattva he vīrya-bodhisattva he mahākāruṇika라는 구절이 삽입되어 있다.

314) 여타 역본들과는 달리 금강지(no.1061) 역본에서는 smara가 중복 사용되지 않고 있으며, 불공(1064) 역본 및 가범달마(1060) 역본 등에서는 이 뒤에 makesake라거나 불공(1113B) 역본에는 mama라는 구절이 삽입되어 있다.

315) 불공(1064)과 가범달마(1060) 本에서는 여기에 摩醯薩醯(makesake)가 추가되고 있다.

316) 금강지(1061) 역본에서는 이 앞에 ehy-ehi Hare āryāvalokiteśvara Maheśvara paramārtha-citta mahākāruṇika라는 구절이 삽입되어 있다.

317) sādhaya-sādhaya라는 구절은 금강지(1061) 역본 및 현행 다라니를 제외한 타 역본에서는 그 용례가 보이지 않으며, 금강지(1061) 역본에서는 이 뒤에 vidyām이란 구절이 삽입되어 있기도 하다.

318) 금강지(1061) 역본에는 이 앞에 dehi-dehi tvaraṁ kāmam gama vihaṅgama siddha-yogeśvara라는 구절이 첨가되어 있다.

319) L. Chandra. p.96.

320) 이 부분은 금강지(1061) 역본에서는 dharendreśvara로, 불공(1113B) 역본에서는 dharaṇī-rāja로 표기된다.

321) malla라는 어구는 금강지(1061) 역본에는 그 표기가 보이지 않고 있으며, 이를 불공(1064) 및 가범달마(1060), 불공(1113B) 역본에서는 mama라 표기하고 있다.

322) 불공(1064) 및 가범달마(1060) 역본에서는 amala란 표기가 보이지 않는다. 그리고 금강지(1061) 역본에는 amala 다음에 āryāvalokiteśvara Jina라는 표기를 행하고 있는 한편, 현행 다라니에서는 mūrtte를 그리고 불공(1064) 및 가범달마(1060), 불공(1113B) 역본 등에는 mūrtte re라는 표기를 보이고 있다.

323) 鄭泰爀 교수([正統密敎], 서울, 경서원, 1988. p.382)는 이 부분을 ‘mala-vimala amala’라 표기하고 있으며, 全在星 교수(「千手觀音 陀羅尼의 梵文 表記와 解釋<경전읽기 모임ed, [팔리대장경 우리말 옮김], 서울, 경전연구소, 1990>」, p.78) 역시 이와 같은 표기를 행하고 있는 즉, 각각 ‘塵垢의 離脫이여, 無垢解脫이여(鄭泰爀. p.385)’거나 ‘티끌을 떠난, 淸淨한(全在星, p.78)’이라 번역하고 있기도 하다.

324) 금강지(1061) 역본에는 이 ‘mama’거나 ‘mala’에 해당하는 부분이 생략되어 있다.

325) L. Chandra. p.93.

326) cala-cala를 ‘요동하는’이 아닌 ‘(이리 저리) 움직이는’이라 한 것은 神의 움직임을 뜻하는 이유에서 ‘(이리 저리) 중생 구제를 위해 움직임’이란 표현을 채택한 것이다. malla가 아닌 mala를 채용한다면 이 문장을 “요동하는 요동하는 不淨이여! 不淨을 여읜 청정한 神이여!”라고 해석할 수 있을 것이다. 또한 mama를 사용한다면 “요동하는 요동하는 나의 부정이여! 부정을 여읜 청정한 神이시여!”라 해석할 수 있게 된다. 이는 문장 성격상 對句로 이해될 수 있는 것들이라 하겠다.

327) 금강지(1061) 역본에서는 이 앞에 다음과 같은 구절을 삽입시키고 있다.

       (16)kṛṣṇa-jaṭā-makuṭā 'varama prarama virama mahāsiddha-vidyādhara

       (17)bala-bala mahābala malla-malla mahāmalla cala-cala Mahācala

       (18)kṛṣṇa-varṇa dīrgha-kṛṣṇa-pakṣa-nirghātana he padma-hasta

       (19)cala-cala Mahācala kṛṣṇa-sarpa-kṛta-yajñopavīta

328) 금강지(1061) 역본에는 ehy-ehi 다음에 mahā Varāha-mukha Tripura-dahan-eśvara Nārāyaṇa-balopabala-veśa-dhara라는 내용이 삽입되는 바, 가범달마(1060) 및 불공(1064), 불공(1113B) 역본 등에서는 이를 ‘室那室那 阿囉   佛囉舍利(cinda 2 arṣam pracali)’라 싣고 있으며, 현행 다라니에서는 ‘Lokeśvara’라는 내용을 싣고 있다.

       여기서 “cinda는 kṛṣṇa의 悉曇 표기이며, 2 arṣam은 산스크리트어 sa(     )字를 2라는 숫자로 잘못 오인하였고 rpa(   )를 rṣa(   )로 잘못 읽음으로서 생겨난 실수로서, sarpa라 정정해야 할 것이며, pracali는 upavīta라 이해할 수 있는 바, ‘닐라깐타가 그의 목으로 검은 독을 삼켰다’는 뜻으로 해석할 수 있다”.(L. Chandra. p.97. 참조)

329) 금강지(1061) 역본에는 이 앞에 he Nīlakaṇṭa he Mahākāla halāhala -viśa-nirjita lokasya라는 구절이 삽입되어 있다.

330) 현행 다라니 및 금강지(1061) 역본을 제외한 기타 역본에서는 이 부분이 생략되어 있다.

331) 불공(1064) 및 가범달마(1060), 불공(1113B) 역본 등에서는 이 부분이 praśaya라 표기되고 있다.

332) 이 부분은 현행 다라니 및 금강지(1061) 역본을 제외한 여타 역본에서는 발견되지 않으며, 금강지本에서는 jāla라는 표기가 생략되어 있기도 하다.

333) 불공(1064) 및 가범달마(1060) 역본에서는 hulu가 중복 사용되고 있으며, 금강지(1061) 역본에서는 Padmanābha 앞에 mahā가 삽입되어 있기도 하다. 한편 불공(1064) 및 가범달마(1060) 역본에서는 Padmanābha가 생략되어 있다.

334) 금강지(1061) 역본에는 muru-muru라는 어구가 삽입되어 있다.

335) L. Chandra에 의하면 이 부분은 ‘suru-suru’라 표기되어 있으나, suru라는 단어는 사전에 나오지 않는 표기이다. 굳이 연관시켜 본다면 suru는 1류동사 sru의 명령형으로서 이해할 수 있을 뿐인 바, sru라 표기하여도 번역에 있어서는 큰 차이가 생겨나지는 않는다.

       이에 鄭泰爀 敎授 및 全在星 敎授 등은 이를 ‘sru sru’라 표기하고 있는 바, 鄭泰爀 敎授는 이를 타동사의 명령형으로 해석하였으며, 全在星 敎授는 이를 의태어적 표현으로 인식한 채 번역하지 않고 있다. 필자 역시 해석상의 이유로 ‘sru sru‘라는 표기를 사용하였다.

336) 어떤 면에서 생각해 볼 때 sara-sara siri-siri suru-suru라는 전체 문장은 祭儀와 관련을 맺는 것으로 이해되기도 한다. 여기 sru-sru에서 sru는 ‘숟가락’을 의미하는 명사 srū와 관련을 맺기도 한다. 여기서 숟가락은 인도에서 祭式을 행할 때 제사음식인 버터를 祭器(srūc)에 집어 넣는데 사용하는 것으로서, 위 문장은 그 숟가락(srū)에 버터를 담아 祭器인 srūc에 넣기를 반복하는 모습(sara-sara siri-siri)을 그리고 있는 것이라 할 수도 있다. 곧 끊임없는 제사의 광경을 나타내는 말이라 할 수 있다. 참고해 볼 만한 내용이라 하겠다.

337) L. Chandra는 buddhya-buddhya란 표기를 행하고 있는 바, 필자는 문장 내용상 이를 具格으로 해석함이 나으리라는 생각에 마지막 a를 장음 ā로 바꿔 buddhyā-buddhyā라 표기하였다. 기타本에서는 buddhya-buddhya 대신 budhiya-budhiya라는 표기를 취하고 있다.

338) 금강지(1061) 역본에서는 이 앞에 다음과 같은 내용이 삽입되어 있다.

       (25)ehy-ehi vāma-sthita-Siṁha-mukha (26)hasa-hasa muñca -muñca mahāṭṭahāsam (27)ehy-ehi bho mahāsiddha-yogeśvara (28)bhaṇa-bhaṇa vācam (29)sādhaya-sādhaya vidyām (30)smara -smara taṁ bhagavantaṁ lokita-vilokitaṁ Lokeśvaraṁ tathāgatam (31)dadāhi me darśana

339) 금강지(1061) 역본과 현행 다라니를 제외한 기타 역본에서는 이 표기가 생략되어 있다.

340) 불공(1113B) 및 가범달마(1060), 불공(1064) 역본 등에서는 prahlādaya 대신 ‘波夜(paya)’라는 표기를 행하고 있다. 그러나 “悉曇에서 paya는 p[rahlada]ya를 말하는 까닭”(L. Chandra. p.98)에 의미에 있어 차이가 생겨나지는 않는다.

341) [마하바라타]의 여주인공 kāmā(Pṛthuśravas의 娘)를 말하기도 한다. 여기서 kāma는 죽음(mṛta)이라는 괴로움(duḥkha)으로부터 不死(amṛta)의 즐거움(kāma)을 얻는다는 의미로서의 kāma를 이해해야 할 것이다.

342) L. Chandra는 이 단어를 prahlādaya라 하였는 바, 필자는 이를 與格으로 해석함이 무난하리라는 생각 속에 prahlāda+ya=prahlādāya라는 원칙에 의해 a를 ā로 바꿔 표기하였다.

343) [마하바라타] 가운데 등장하는 阿修羅의 名稱으로서, vairocana의 아버지로 이해되며, indra의 敵, 또는 비슈누의 숭배자로 묘사되고 있다. 한편  kāyādhava라 별칭되기도 하는 바, kāya는 prajapati, 즉 쉬바의 아내를, dhava는 소유자를 뜻한다. 그러므로 prajapati의 소유자, 즉 쉬바의 별칭이 되기도 한다.

344) 금강지本(1061)을 제외한 기타 역본은 다음과 같이 각각 다른 표기를 보이고 있다.

      金剛智(1061) 譯本

        varāhamukhāya svāhā MahāNarasiṁhamukhāya svāhā

      不空(1113B) 譯本 및 不空(1064), 伽梵達磨(1060) 譯本

        maranara       svāhā Sirasiṁhamukhāya        svāhā

       여기서 maranara(摩羅那羅)는 varāhamukhāya의 訛傳된 표기이며, 금강지 역본에서의 MahāNarasiṁhamukhāya를, 불공(1113B) 및 가범달마(1060), 불공(1064) 역본에서는 maha를 빼고 Sirasiṁhamukhāya라 하는 바, 여기서 Sira 역시 Nara의 訛音이 된다. 현행 다라니에서는 앞의 svāhā를 빼고 varāhamukha-siṁhamukhāya svāhā란 표기만을 행하고 있다.

345) 금강지(1061) 역본에는 이 앞에 siddha-viddya-vidyādharāya svāhā라는 내용이 첨가되어 있다.

346) 불공(1064) 및 가범달마(1060) 역본에는 이후에 padma-hastāya svāhā라는 내용이 삽입되어 있다. 한편 이후의 몇몇 문장은 현행 다라니와 그 순서의 차이를 보이고 있다. 앞의 공관도표에서 각각 역본의 원래 순서를 (  ) 안에 번호로 표기해 두었으니, 참고 바란다.

347) 불공(1113B) 역본 및 불공(1064), 가범달마(1060) 역본에서는 이 문장과 뒷 문장의 순서가 바뀌어져 있는 채, śaṅkha-śabda-nibodhanāya svāhā라는 어구 대신 mahābali-śaṅkarāya svāhā라는 어구가 쓰이고 있다.

348) nibodhanāya에서 ni는 ‘아래’ ‘안에’ ‘뒤에’를 뜻하는 동사의 접두어, 그리고 bodhana는 ‘呪文을 유효케 하다(혹은 ’눈을 뜨다‘)’는 의미의 형용사가 되어지는 바, 둘을 합하면 ‘呪文을 유효케 한 뒤에(’눈을 뜬 뒤에‘)’라는 뜻을 얻게 된다. 여기에 문장의 주어격으로 앞의 구절이 오게 되니, ‘呪文을 유효케 한 후(‘눈을 뜬 뒤’)의 소라고둥(Viṣṇu의) 소리’가 되며, 그 뒤에 여격어미 ya와 svāhā가 붙어 “呪文을 유효케 한 이후(‘눈을 뜬 뒤’) (울리게 될) 소라고둥(Viṣṇu의) 소리에 영광이 있기를!”이라고 이 문장 전체를 해석할 수 있기도 하다.

       한편 불공本(1113B)과 불공 및 가범달마 역본에서는 이 부분을 摩婆利 勝羯囉夜 娑婆訶(mahābali-śaṅkarāya svāhā)라 표기하고 있는 바, 한글 음역 및 금강지本과 많은 차이을 보이고 있다. 여기 mahābali-śaṅkarāya에서 mahābali는 ‘출중하게 강한’이란 뜻을 갖는다. 그리고 śaṅkara는 Śiva神의 명칭에 해당되니, “출중하게 강한 (Śiva)神께(ya) 영광이 있기를(svāhā)!”이라 이를 번역할 수 있게 된다.

       이를 위의 문장과 비교해 보면 위에서는 śaṅkha(소라고둥, 혹은 Viṣṇu神)란 단어를 사용하고 있는 대신 이 문장에서는 śaṅkara(Śiva神)라는 단어를 사용하고 있는 바, 이는 ‘소라고둥(或은 Viṣṇu의) 소리(śabda)의 우렁참’과 ‘출중하게 강한(mahābali) Śiva神(śaṅkha)’과의 의미상의 유사점과 아울러, śaṅkha와 śaṅkara라는 단어 표기상의 유사점 속에 큰 무리가 생기지 않는다는 생각으로 이러한 표기를 행한 것으로 여겨진다.

349) 금강지(1061) 역본에는 이 앞에 (41)Kṛṣṇa-sarpa-kṛta-yajñopavītāya svāhā라는 문장이 삽입되어 있다.

350) 이 문장은 불공本(1113B) 및 불공(1064), 가범달마(1060) 역본에서는 생략되어 있다.

351) 이 문장은 불공本(1113B) 및 불공(1064), 가범달마(1060) 역본에는 생략되어 있다.

352) 금강지(1061) 역본은 현행 다라니와 내용의 일치를 보이고 있으나, 불공(1113B) 역본 및 가범달마(1060), 불공(1064) 역본에서는 (29) Nīlakaṇṭa-vyāghrāya svāhā라는 표기를 보이고 있다.

       한편 금강지(1061) 역본에는 이 문장 다음에 (47)Lokeśvarāya svāhā (48)sarva-siddhe-śvarāya svāhā라는 문장이 삽입되어 있기도 하다.

353) 금강지(1061) 역본에는 이 부분이 생략되어 있다.

354) 이 부분은 각 역본마다 다음과 같이 표기에 있어 상당한 차이를 보이고 있다.

      金剛智:namo bhagavate aryāvalokiteśvarāya bodhisattvāya mahā-  -sattvāya mahākāruṇikāya

      現行本:namaḥ            aryāvalokiteśvarāya           svāhā

      伽.不 :nama             aryāvalokiteśvarāya            svāhā

      不空  :nama             aryāvalokiteśvarāya bodhi     svāhā

       한편 다음 역본 등에는 이후 다음과 같은 구절이 첨가되어 있기도 하다.

      金剛智(1061)  :     siddhyantu me mantra-padāni svāhā

      伽梵達磨(1060):     siddhyantu     mantra-padāni svāhā

      不空(1060)    : oṁ siddhyantu     mantra-padāni svāhā

       여기 이 부분을 금강지(1061) 역본에 의거(불공本의 oṁ 삽입)해 번역해 보면, oṁ siddhyantu me mantra-padāni svāhā에서 siddhyantu란 ‘완성’의 의미를 갖는 명사 siddhi에 3인칭 명령형 어미가 붙어(siddhi+antu=siddhyantu) “아(oṁ)! (그것들은) 완성되어지이다”에 ‘나의’란 뜻을 갖는 aham의 屬格 me, 그리고 ‘찬가, 주문’을 뜻하는 mantra와, ‘(veda의) 독송 방법’을 뜻하는 명사 pada의 복수 주격형, 즉 ‘(veda의) 독송 방법들’이란 뜻의 padāni에 svāhā가 붙어진 말로 “아! 완성되어지이다, 나의 呪文 독송 방법들이여, 영광이 있기를!”이라 전체 문장을 해석할 수 있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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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묘장구대다라니의 공덕

 

-지광스님 법문중에서-

 

 천수경의압권은신묘장구대다라니[神妙章句大陀羅尼]입니다. 신묘장구대다라니는문자그대로 여래의 지혜, 자비를 갈무린 여래의 본체라 부릅니다. 한량없는 여래의대비신력과 위신력을 머금은 대다라니이기에 그 신통묘용은 말로 다 헤아릴 길이 없습니다. 

 

 관세음보살님께서는「대다라니는 뭇 중생들의 안락함을 얻게 하기 위해, 긴 수명을 얻게 하기 위해, 풍요로움을 얻게 하기 위해, 모든 그릇된 행위로 지은 중죄를 녹여내리기 위해, 모든 장애와 곤란을 떠나기 위해, 무구 청정한 공덕을 늘리기 위해, 모든 선근을 성취하기 위해, 모든 두려움을 먼저 여의기 위해, 간절히 원하는 것을 모두 속히 만족시키기 위해 설하여진 것이니라」라고 말씀하셨습니다. 또한 인간이나 천상 대중으로 대비신주를 외워 지니는 이는 15가지 좋은 태어남을 얻고 15가지 나쁜 죽음을 받지 않습니다. 

 

15가지 나쁜 죽음을 받지 않음이란,

 

배고픈 고통으로 죽지 않게 하며

옥에 갇혀 매맞아 죽지 않게 하며

원수와 상대해서 죽지 않게 하며

전쟁터에서 서로 싸워 죽지 않게 하며

사나운 짐승에게 물려 죽지 않게 하며

독사 전갈에게 물려 죽지 않게 하며

불에 타 죽거나 물에 빠져 죽지 않게 하며

독약을 먹고 죽지 않게 하며

독충의 독으로 죽지 않게 하며

미쳐 죽지 않게 하며

산이나 낭떠러지에서 떨어져 죽지 않게 하며

나쁜 사람의 저주로 죽지 않게 하며

악귀에게 홀려 죽지 않게 하며

악병으로 죽지 않게 하며

자살로 죽지 않게 함입니다. 

또 15가지 좋은 태어남이란,

태어나는 곳마다 늘 좋은 정치지도자를 만나며

늘 좋은 나라에 태어나며

늘 좋은 때를 만나며

늘 좋은 벗을 만나며

몸에 결함이 없으며

진리를 향하는 마음이 돈독하며

계를 범하지 않으며

가정이 늘 화목하며

음식과 재물이 풍요로우며

늘 다른 사람의 공경과 도움을 받으며

재보를 도둑 맞지 않으며

바른 뜻으로 구하는 것이 모두 이루어지며

천룡팔부신장과 선신들이 옹호하며

태어나는 곳마다 부처님 법을 들으며

바른 법을 듣고 그 깊은 뜻을 깨치게 된다 하였습니다. 

 

이와 같이 대다라니의 공덕은 문자 그대로 무량한 것이어서 관세음보살님께서도 부지런히 독송할 것을 가르치셨습니다. 다라니를 수지 독송하는 사람의 공덕에 대해 관세음보살님께서는 `나의 자비, 방편의 힘으로 필요한 바를 모두 성취케 되며, 삼악도 중생들이 이 다라니를 들으면 모두 고통을 여의게 되며, 초발심의 자리로부터 부처님의 자리에까지 속히 이르도록 하며, 32상 80종호를 속히 이루게 되리라 하셨습니다. 

그밖에「만약 모든 사람과 하늘 대중으로 이 다라니를 외워 지니는 자가 강이나 냇물, 큰 바다 가운데 목욕하면 그 물 가운데 있는 모든 부류의 생물들은 이 사람이 몸을 씻는 물이 그 몸을 적시기만 해도 모든 잘못된 행위와 무거운 죄가 사라지게 되고, 곧 서방정토에 태어나 연꽃에 화생하여 낙을 누리게 된다. 또 만약 다라니를 외워 지니는 자가 길을 갈 때, 때마침 큰 바람이 이 사람의 몸이나 머리칼 옷에 스치면, 그 바람의 흐름을 스쳐 지나가는 모든 부류의 사람들은 그 사람의 몸을 스쳐 흐른 바람이 몸에 불어 닿기만 해도 모든 무거운 죄와 잘못된 행위가 사라져 다시는 삼악도의 과보를 받지 않고 늘 부처님 앞에 태어나게 되리라. 그러므로 이 다라니를 받아 지니는 자는 복덕의 과보가 말할 수 없고 생각할 수도 없느리라」고 하셨습니다. 

그밖에, 이 다라니를 외워 지니는 사람은

 

부처님의 몸《佛身藏》이며

광명신《光明身》이며

자비장《慈悲藏》이며

묘법장《妙法藏》이며

선정처《禪定處》이며

허공장《虛空藏》이며

무외장《無畏藏》이며

묘어장《妙語藏》이며

상주장《常住藏》이며

해탈장《解脫藏》이며

약왕장《藥王藏》이며

신통장《神通藏》이 된다

하시는 등, 다라니 수지의 공덕은 참으로 무량하다 말씀하셨습니다. 부처님께서는 특히 다라니를 지닐 경우 갖가지 병으로부터 해방된다는 가르침을 낱낱이 말씀하셨습니다. 

 

신묘장구대다라니경 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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