몇년 전 아니 십 몇년 전에 북한산에 갔다가 우연히 의상봉으로 올라가다가 길을 잘 못 들었다. 경사가 아주 급해 올라가지도 내려가지 못하다가 다른 등산객을 만나서 조심스럽게 따라 내려온 기억이 있었다. 

가을 빛이 밝아 북한산을 찾았다가 의상봉에서 헤메었던 기억을 떠올라 다시 가보기로 하였다. 올해는 의상봉 올라가는 길이 정비가 잘 되어있는 느낌이다. 

 

급경사 구간이 많다. 45도도 넘어보이는 가파른 바위 돌 길을 지났다. 적지 않은 나이가 되자 고소공포증이 생긴 것이 확실하다. 산이 흔들린다고 탓을 하고 싶을 정도로 다리가 후들거린다. 급기야 철봉 가이드를 잡아야 올라갈 수 있는 암벽이 나왔다. 그런데, 이런 철봉 잡기를 마다하고 그 옆으로 더 급한 경사길로 가시는 분들이 있었다. 그 쪽으로도 갈 만한 길이냐고 호기롭게 묻자 나 정도 체격이면 수월할 것이라고 한다.  의상봉 정상까지 거리의 중간 정도까지 오자 난데 없는 자신감이 생겼는지 그 분들을 따라 나섰다.

암벽 바위 틈을 기어 올라가면 그 다음은 수월하다고 한다. 바위틈 중간에 손을 넣어 지지하며 왼쪽 다리를 직각 이상 위로 들어 올리고 무릎을 손으로 잡아 당겨 발바닥이 최대한 바위 위쪽을 딪게 했다. 이제 왼쪽 다리에 힘을 주고 일어서듯이 바위 위로 올라갈 수 있었다.  그런데...

아래를 내려다 보지 말걸 그랬다. 가슴이 철렁하고 내려앉는다. 못 올라올데를 온 것이다. 아래를 더이상 처다볼 수 없으니 내려갈 수는 없다. 위 쪽을 보니 절벽이다. 여기를 줄도 없이 어떻게 올라가나...

 

암벽 윗쪽으로 사지를 큰 대자로 하여 엎드렸다. 위 쪽으로 포복하여 올라가듯 발버둥을 쳤다. 왼 쪽 무릎 부분 바지가 찢어진다. 그러나 위로 나아 가지는 앉는다. 사태가 심각하다고 느꼈는지 위쪽에서 보고 있던 분이 그렇게 하면 못 올라오니, 두발은 걷고 손으로 위쪽을 짚으면서 두 손 두 발로 걷 듯이 올라오라고 일러준다. 중간에 멈추지 말고 쭈욱 오라고 한다. 다행히 일러준대로 걸을 수 있었다. 경황 없이 앉아서 한숨을 돌리자니 제대로 인사도 못드린 그 분들은 총총히 길을 떠난다. 그다음 부터는 간이 콩알만해져서 어떻게 해서든 정상까지만 가보고 집에가자고 생각했다. 다시는 무서워서 오지 않을 것 같았다.  

 

그러나, 그다음 날 오전 일을 빨리 마치고 의상봉으로 달려왔다. 물론, 릿지 코스는 가지 않는다. 그 옆을 지나가면서 저기를 어떻게 어제 올라갔을까 생각한다. 대학시절 지리산을 몇번 종주하고 패러글라이딩도 탔었던 '라떼'는 절대로 함부로 꺼내지 않는 것은 잘한 일이다. 고소공포증에 후들거리는 무릎을 두손으로 감싸보며 왜 이렇게 약해 졌을까 생각해 본다. 릿지 코스의 위아래쪽을 자세히 살펴보면 어떤 면에서 극히 위험하다고는 하기 어렵다. 낭떨어지 같이 수직으로 서있는 바위지만 기어 오르다 떨어져도 바로 아래 쪽에 바위와 나무가 있다. 아파트로 치면 꼭대기 층에서 뛰어도 1층으로 떨어지는 것이 아니라 바로 아래 집 베란다로 떨어진다고 비유해도 될 것 같다. 결국 마음에 문제인 것 같다. 높은 곳에 서면 두려운 마음이 들게하는 어떤 메카니즘이 급하게 작동한다.  

Posted by 샤르딘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