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마존 알렉사(아래 유튜브)는 시리나 다른 쳇봇 인공지능 보다 똑똑하고 유용해 보인다. 하지만, 음모론의 한 부분 같다. 조지오웰의 1984에 나오는 빅브라더의 텔레스크린은 화장실을 포함한 모든 공간에 몰래 강제로 설치된다. (조지오웰의 1984는 트럼프의 대통령 당선 이후 다시 인기를 끌고 있다. 트럼프의 막말 트위터와 가짜 뉴스 등이 1984에서 권력자가 개인들을 감시하는 ) 모든 사람들의 대화를 녹음하기 위해. 반면 알렉사는 처음에는 온라인으로 물건사고 거실 불끄는데 유용한 도구인 줄 안고 자발적으로 사용하게 되겠지. 알렉사와 텔레스크린의 차이점이다. 어느쪽이든 결국 개인의 모든 대화와 일상의 기록은 인공지능 쳇봇 따위가 녹음하고 촬영하는 시대가 된다. 더 낳은 서비스를 위해 기존 대화기록을 분석하고 학습하는 머신 러닝 기능을 가지고 있다는 찬사를 들으면서 개인들은 그러려니 하고 말뿐이다. 그런데, 그 기록은 기업체 관계자 등 소수만 접근할 수 있다. 번거롭게 영장청구하면 검찰정도는 볼 수 있을 것이다. 늦었지만 삼성엘쥐도 곧 알렉사 같은 제품을 따라 할게 분명하다. 누군가 온세상 사람들을 촬영하고 녹음하여 뭔가 음모를 꾸미려고 알렉사를 만들었다면 과대망상이라고 하겠지. 
하지만, 알렉사를 개발하고 관리한 과학기술 엘리트가 어느날 정치에 휩싸였다고 하자. 국민의당 이유미처럼... 알렉사의 빅데이터를 검색해보니, 정치 이야기도 많이 포함되어 있고...심지어 누군가의 대화속에 키워드를 추적하면 정적 일당들의 비밀을 파헤칠 수도 있고...

알렉사를 많은 사람이 사용하게 되면, 아마존 같은 기업이 또 다른 권력을 소유하게 되는 건 아닐까. 어리석은 개인들에게 눈 앞에 작은 편리함과 이익을 주는 것처럼 해서 알렉사를 쓰게하고...심지어 기업들의 모든 제품과 서비스가 그러하듯 초기 제품에 대한 오류와 실패에 대한 기회비용도 개인들이 동의하든 안하든 사용자가 치르게 하고...


결국 개인들은 돈내고 새로운 권력의 탄생에 기여하게 된다. 역사는 회오리처럼 순환하며 되풀이 된다는 밀란쿤데라의 표현이 생각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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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편집인 샤르딘




"나는 고양이라 한다. 아직 이름은 없다(吾輩は猫である。 名前はまだ無い。)"라는 일본의 근대문학을 열었다고 추앙받는 나쓰메 소세키의 이 첫문장은 일본의 문학에 두고 두고 인용되고 있다고 한다. 


100년도 넘은 소설인데 아직도 독자를 휘어잡는 수법이 현대적으로 느껴진다.  (대문호 소세키의 글쓰기를 수법이라고 표현하기에는 어울리지 않을지도 모르지만)  심지어 고양이가 자신을 관조하는 바를 사실적으로 묘사하는 부분을 읽다 보면 금세 빨려들어간다.  고양이가 부엌에서 찐득찐득한 떡을 베어 물려다가 이빨을 못 빼고 누가 올까 고뇌하는 장면을 읽으면 슬슬 터져 나오는 웃음을 참기 어렵고 점점 고양이가 되어 몰입된다. 


그 고양이의 눈으로 시니컬하게 근대의 인간의 속물적인 근성과, 군국주의 메이지 시대의 일상적인 풍경, 무사안일하고 이기적인 실업가들의 행태를 비판하는 부분은 통렬할 지경이다. 


아마도 저작권이 만료되어서인지 몇 달에 한 번씩은 국내에서 출판되는 것 같다. 판매량을 늘리려는 국내 출판계의 악착같은 노력의 결과인지 소세키의 이 소설에 대한 서평도 찬사가 대부분이다. 


그런데, 나는 읽으면서 한편으론 무서운 생각이 들었다.  흡사 우리를 식민 지배했던 나라의 유약한 지식인의 일기를 훔쳐보는 기분이 들어서다. 가끔씩 침략국 신민이었던 작가가 한두 마디 내뱉는 말들이 몸서리치게 오싹하다. 내가 만약 일제시대에 살고 있으면서 '나는고양이로소이다'를 읽는다면, 그 오싹함은 공포감이 되기에 충분했을 것이다.   






그 이유는 소설 초입에 '여순 함락', '전승국', 따위의 단어를 발견하면서 두가지가 생각났기 때문이다. 아래 본문을 조금 옮겨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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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말 좋은 날씨네요, 한가하시면 함께 산책이나 가실까요? 여순旅順이 함락됐다고 해서  시내가 난리입니다' 하고 권유해본다. 주인은 여순 함락보다도 주변 여자들의 신원을 알고 싶다는 얼굴로 한참 생각에 잠기더니 , 우 결심이 섰는지 '그럼 나가보세' 하고 과감하게 일어선다.

"




 

첫 번째 두려움은 '지배자들과 함께하는 일상의 잔인함' 정도로 표현하고 싶다.  1997년에 상영된 <인생은 아름다워>라는 영화에서 이런 장면이 떠올랐다.  주인공인 수용소의 유태인 '귀도'가 서빙을 하다가 전부터 다소 안면이 있는 한 독일군 장교의 부름을 받는다.  그 독일군 장교는 수저를 떨어뜨리는 신호를 보내 귀도와 한쪽 구석에서 몰래 대화를 나누려 한다.




귀도는 '그의 대화 제의가 수용소를 벗어날 수 있는 어떤 시그널'인지 기대하는 표정을 짓지만, 안타깝게도 유약해 보이는 독일군 장교는 사소한 질문을 한다.   독일군 장교의 질문은 친구가 보낸 수수께끼의 답이 '오리'인지 '오리너구리'인지 귀도에게 걱정스러운 얼굴로 물었던 것이다. 그 답을 알기 전에는 자신은 비엔나의 친구에게 답장을 보낼 수도 없다며 흐느끼기 직전이다. 순간, 살고 죽는 문제에 도움을 받을 수 있는 정보가 아닐까 하고 일말의 기대를 가졌을 귀도가 느낀 실망은 두려움으로 변했다. 


영화가 개봉되었을 때 바로 보았으니, 20년도 넘은 장면이지만 귀도의 입장에 몰입된 안타까움이 아직도 남아있었나 보다.  소세키의 소설을 읽으니 귀도처럼 나의 운명이 나와 크게 다를 바 없이 유약해 보이는 누군가의 손에 쥐어졌을 때 느껴질 절망감이 다시 한번 강렬히 떠올랐다.  내가 겪어본 경험인 것처럼 말이다.  매 순간 생사가 갈릴 수 있는 줄타기 같은 삶을 이어가는 수용소의 포로에게 지배자들의 사소한 일상을 바라보는 잔인함이란.  그리고 그 사소한 일상의 문제를 심지어 굳 죽게 생긴 나에게 도와달라고 한다면.



두 번째로 '전승국'이라는 단어에서 개인적으로는 미국에서 우연히 만나 알고 지내던 일본인 친구 유끼가 떠올렸다. 그 친구는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시모노세키에서 배를 타고 부산으로 와서 서울까지 고속버스로 여행을 했다고 한다. 60~70년 대생 일본 젊은이들 사이에서 조금 유행하던 스타일의 저렴한 해외여행이라고 했다.  무슨 대화를 하다가 그런 말이 나왔는지 모르겠지만, 일본의 완고한 노인들은 그때 우리가 조금 더 잘했으면 2차대전의 '전승국'으로 남았을 것이며, 한국은 여전히 식민지로 남아있을 것이라고 생각하는 사람도 많다는 말을 들었다. 유끼는 돌려서 아주 조심스럽게 말해주었지만 나는 약간 놀랐고 그 후 점점 그와는 멀어졌다. 그를 볼 때 마다 일본의 젊은이들은 자신의 선조들이 침략했던 나라를 부산에서 서울까지 버스로 돌아보는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드는 것을 지울 수도 없었다.


 나는 조지 오웰의 민족주의에 대한 생각에 동감한다.  오웰이 정의한 민족주의자들은 인간을 벌레 떼처럼 집단으로 분류하고, 어떤 집단은 좋고 나쁘다는 '딱지'를 붙인다. 이어 선악에 대한 판단을 초월하고 소속된 민족의 이익만을 최선으로 여긴다. 이것이 '민족주의'의 습성이라고 비판하는 오웰의 주장에 동의한다.   우리 민족이 오웰이 비판하는 식의 일본식 민족주의적인 입장에서 유린당했던 그 시대에 태어났다면, 친구처럼 지내던 유끼 같은 일본의 젊은이들을 악연으로 만나는 잔인한 경우를 당했겠다 싶다.



내가 바람 앞에 등불 같던 대한제국 시대에 태어났다면,  청일전쟁과 러일전쟁으로 승승 장구하던 일본의 작가가 지식인의 위선을 풍자하는, 탁월한 글 솜씨로 웃을 수밖에 없는 묘사 속에 사소한 듯 흘리는 일본의 '전승 소식'이란 문구를 읽었다면, 어떤 기분이 들었을까.   일제 강점기 때 소세키를 읽는다면, 그런 귀도가 느꼈을 '지배당하는 일상속의 잔인함'을 뼈저리게 느껴지지 않았을까. 


'전승국의 국민'이라는 표현이 나온 본문을 조금 더 옮겨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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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세기의 오늘날같이 교통의 발달이나 연회의 증가는 말할 것도 없고군국軍國 일본이 러시아 정벌을   2년째가 되는 이때우리 전승국의 국민 반드시 로마인을 본받아  목욕 구토의 방법을 연구해야  시기에 이르렀다고 자신하는 바이옵니다 그렇게 하지 않으면 모처럼의 대국민도 가까운 장래에 모조리 대형처럼 위장병 환자가 되지 않을까은근히 걱정이 되옵니다.


... ...



구토 방법을 부흥시키는 것도 멀지 않을 것으로 믿고 있습니다이는 발견하는 대로 보고해 드릴 터이니 그렇게 알고 계시기 바랍니다그리고 앞서 말씀드린 도치멘보와 공작 혓바닥 요리도   있으면  방법을 발견한 뒤에 하고자 하오니그렇게 하면 소생의 사정은 물론 이미 위약증으로 고생하고 계시는 대형을 위해서도 편하리라고 생각되옵니다.

"




지식인들의 위선과 이중성을 '공작새의 혀요리와 도치멘보' 에피소드로 표현한 것은 절묘하다.  우연히 존재하지 않는 '도치멘보(하이쿠 시인의 이름)'를 고급 요리의 이름인 것처럼 주문하자 '재료가 떨어졌다'고 한다.  레스토랑 주인은 심지어 전승국 일본이 로마인을 본받아 '먹은 것을 다 토해내고 다시 먹을 수 있는 방법'을 알아낸 이후에 도치멘보를 만들어 들이겠다고 편지한다.  모르는 것을 모른다고 하지 못하는 지식인들의 자존심과 허세에 대한 비판이 교묘하다. 일본을 로마에 비유한 듯한데, 자조적인 표현인지 자부심인지 모르겠으나 재미있다. 


소세키는 일본 문무성의 1회 장학생으로 영국에 유학했다.  '더 많이 먹기 위한 고대 로마 귀족의 구토 법'은 요즘도 검색 가치가 있어서 해외 블로그에 '고대 로마인에 대한 진실과 거짓' 같은 제목으로 회자되곤 한다. 소세키는 일찍이 19세기 후반에 접하고 소설에 선구적으로 인용한 셈이다.  


소세키는 <나는고양이로소이다>를 한 하이쿠 잡지에 실으면서 연재소설로 시작했다고 한다. 따라서 당시에는 시사적인 이야기를 등장인물의 대화에 드문 드문 포함시켜 재미를 더 하려 했을 것이다. 그런데, 소세키는 <나는고양이로소이다>의 한 연재 편에  '여순 함락'이라고 표현했던 전승 소식이, 이후 중국인들에게 '여순대도살’(旅順大屠殺)'이라는 인류사의 한 비극이라 불리는 것을 죽기 전에 접했을까 궁금하다. 어떤 문학 작품이 당대의 역사와 정치에 대한 의식을 포함하지 않고 있다고 해서 비판받을 이유는 없다. 인간의 내면의식에 보다 더 집중하고 유미주의를 추구할 수도 있으니까. 그러나 소세키는 근대의 인간을 자조적으로 성찰할뿐더러 당시의 일본 사회상과 실업가를 통렬하게 비판하는 의식있는 지식인처럼 느껴지기에 여순대학살을 알고 있었는지 궁금하다.   


매 페이지마다 교양주의가 넘쳐난다.  고대 그리스 시인 호메로스의 대서사시 <오딧세이야>부터, 로마신화, 서양철학, 도연명의 줄없는 거문고, 장자, 제갈공명, 불교철학 이야기 등 동서양 고전을 두루 인용한다. 그러나 표절의혹도 있다.  1819년과 1821년에 1부와 2부로 발간된 빌헬름 호프만의 장편소설 <수고양이 무르의 인생관>과 설정과 내용면에서 유사하다.  무르를 언급한 부분을 옮겨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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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양이로 태어나 인간 세상에 지도 벌써 2년이 넘었다. 스스로는 정도의 견식가는 없으리라 생각했는데 , 요전에 카텔 무르라는 전혀 듣도 보도 못한 동족이 돌연 대기염을 토해 조금 놀랐다. 들어보니, 실은 전에 죽었는데 문득 호기심이 나서 일부러 유령이 되어 나를 놀래주려고 저승에서 출장을 나온 거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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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양이가 화자이며 고양이의 버릇을 고치기 위해 채찍으로 때리는 장면이나 마지막에 고양이가 죽으면서 끝나는 것도 비슷하다. 자신의 표절 또한 지식인의 한 위선으로 몸소 보여 주고 이를 독자들이 눈치채지 못할까 마지막 부분에 무르에 대한 언급도 친절히 넣어 주었을까? 


<나는고양이로소이다>를 읽고 나니, 2017년 6월28일 개봉하는 영화 '박열'의 포스터가 눈에 확 띈다. 이준익 감독이 만들었고 이제훈이 주연이다. 한 포스터의 윗부분에는 1922년 '조선청년'이라는 잡지에 박열 의사가 기고한 시가 적혀있다. 











박열 의사의 시는 나쓰메소세키의 <나는고양이로소이다>를 풍자해서 쓴 것이 분명해 보인다. 군국주의 침략국 지식인의 유약함 속에서 이중적인 잔인함과 공포스러움을 발견했던 나에게 박열 의사의 시는 통쾌하다. 


설혹 출판사가 생계를 위해 적은 글로 보일 지라도 <나는고양이로소이다>를 무조건 찬사해 마지않는 서평들을 보면 기분이 나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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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편집인 샤르딘



KT 올레 지난달 요금 '중복' '이중' '두번' 자동이체 출금해서 빼가다



KT에서 6월달 요금이 'FB 통신'이라는 이름으로 두번 자동이체 되었고, 이를 친절하게 문자로 알려 주었다.  휴대폰 결제예상요금 15만원 정도 빼고 30만원은 누군가에 보낼 돈이 었다.  이중결제로 잔고가 부족해서 보낼 수가 없다. 




그래서 고객센터에 전화하여 어렵게 ARS 매뉴를 통과하여 상담사 연결을 요청 했으나, 잠시 기다리라고 하더니 "지금은 통화량이 많아 접속할 수 없습니다"라고 자동으로 끊긴다. 



오기가 생긴다. 마지막으로 전달 KT 올레 요금이 이중 또는 중복으로 자동이체된 18:32분 이후에 KT상담사와 통화가 될때까지 계속 시도했다. 저녁 20:43분에 통화가 이루어졌다. 상담사 말씀하시길, "혹시 어디 은행계좌세요?"

 신한은행이라고 하자, "신한은행 계좌 사용하는 고객들 중 많은 분들이 이중 결제가 이루어졌는데요. 죄송합니다. 빨리 재송금 처리해드리겠습니다"라고 대답한다. 


죄송하다고 하면 될까? 내 통장에 잔고가 부족하여, 대출금 나가는 돈이 부족하다. 대출금이 오늘 결제가 안되면 하루 연체되는 거다. 한달에 삼일 이하는 연체해도 개인 신용도에 문제가 없다고 들었다. 그런데, 만약 이번 달에 삼일을 연체한 상태에서 마지막 날 통장에 대출금 나갈 돈을 넣어 놨는데 돈이 다른곳으로 그것도 실수로 인한 중복 자동이체로 빠져 나갔으면 어떻게 됐을까?  


갚아야 할 돈을 보내지도 못할 뿐더러, 은행대출이었다면 내 신용도는 한달에 허용(?)될 법한 연체일 3일을 넘어 개인신용평가사에 통보되게 될 것이다. 이로 인해, 신용등급이 6등급에서 만약 7등급으로 떨어졌다면, 제1금융권의 은행대출은 어려워질 수 있다.  그런 경우가 아래 네이버에서 검색되는 기사에서 처럼 '60만명 중복 자동이체 송금된 피해자' 중에 없다고 볼 수 없다. 은행에서 빌리지 못해서 캐피탈 같은 곳에서 대출을 하면 몇퍼센트 높은 금리로 빌려야 한다.  결국 KT올레의 실수로 고객이 피해를 입게 되는 것이다. 고객에게 이러한 금융비용을 보상해야 한다. 


반대로 KT 올레의 입장에서는 60만명의 한달 치 요금을 두번 결제하여, 내일까지 순차적으로 돌려준다고 해도 이자소득 등 금융효과를 거둘 수 있다. 통장에 잔고가 두배로 되니 현금흐름도 좋아졌을 것이다. 고객에게는 미안하다고 하면 그만이다. 


이런 이야기를 KT 상담사에게 차분히 설명했다. 그녀가 기분 나쁘지 않기를 바라면서, 그러자 그러시면 해당 보상권과 관련하여 상담사는 답변을 드리기 어려우니, 내일 담당 과장님이 전화드리도록 메모 남기겠습니다"라고 한다. 단, 순차적으로 전화를 준단다. 불만 접수한 사람이 많으면 언제 연락 줄지 모르는 일이다.  



9시 10분경에 네이버를 검색해보니 KT가 검색 순위 10위안에 들었다. 현황을 알리는 뉴스도 곧 뒤따랐다. 


 


신한은행 KT 5월 통신요금 중복 출금으로 인해, 치킨 시켰다가 결제 못하는 경우도 있고, 잔액이 아예 0원이 되어 버스카드도 안되어 집까지 두시간 걸어갔다는 등의 하소연도 SNS에 회자되고 있다. '죄송하고, 미안하다'는 말로 부족하다. 고객을 우습게 아는 집단적인 대응이 필요해 보인다. 


저녁 11시 35분, 아직까지 KT는 아무 안내도 사과문도 문자도 보내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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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편집인 샤르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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